[문화는 살아있다]사라지는 '고향의 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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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고향을 찾아주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마을 주민 일동. "

몇년전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나를 맞아주는 것은 표정 없는 현수막 뿐이었다.

얼마나 아련한 추억의 고향이던가.

스물 남짓한 나이에 제생의세 (濟生醫世) 를 꿈꾸며 떠나온 고향이었다.

그러나 50을 넘어 찾아본 고향은 반기는 이 하나 없는 빈 마을뿐이었다.

올해도 어김 없이 고향에는 몇년전의 그런 현수막이 성묘객을 맞을 것이다.

근대화 바람에 밀려 잃어버린 우리들의 유산은 얼마나 많은가? 편리만 쫓는 요즘 신세대들은 추석을 그저 하루 노는 날쯤으로 생각한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추석 연휴를 즐기기 위해 미리 성묘를 끝낸다는 얘기들도 들린다.

차례상 앞에 모여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일은 이미 할 일 없는 노인들의 몫으로 치부된지 오래다.

'한강의 기적' 을 낳기 위해 뒤곁으로 밀린 우리의 고풍스런 멋.정.흥은 언제 어디서 회복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찾은 고향집의 하루 밤도 기껏 도회인의 습성 그대로 화투치기나 술 마시기로 새우는 것이 고작이라고 한다.

출세의 높낮이를 겨루는 갈등의 귀향길이 된 지 오래다.

풍성해야 할 추석이 교통지옥을 모면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할 서민들에게서 여유를 찾기 힘들다.

한복으로 단장한 아낙들이 빚은 소담한 송편은 어디로 귀양갔을까? 몇만원이면 간단히 끝낼 차례상을 위해 몇십리 새벽장을 떠나는 촌노들의 정성은 이제 부질없는 헛수고인 세상이다.

차례상에 올릴 생밤을 손수 깐다는 것이 무슨 대수로운 효행이 될까 보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석무렵 지켜 볼 고향선산도 없는 수몰민들의 뒤척이는 밤잠이나, 임진각 망배단에서 북녘의 부모를 기리는 정을 간직하고 있는 한 우리는 물질만능의 폐해에 찌든 정신의 허약증을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선종 <원불교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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