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술 건강기금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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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보건복지부는 담배처럼 술에도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는 것을 추진중이다.

국민건강증진법은 건강유해물질의 판매에 일정액의 기금을 징수, 국민건강 증진사업에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 방침에 대해 술의 유해성 여부와 함께 조세부담의 왜곡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찬반 입장을 들어본다.

알콜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마약의 일종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더 이상 기호품이 아니다.

87년 서울대 정신과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남자의 30%이상이 알콜 중독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영남대 (88년) 및 경희대 (92년) 대학병원에 입원한 전체 남자환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25~38%가 알콜 중독 수준으로 나타났다.

알콜 중독 숫자로 따진다면 알콜 중독 예방교육및 치료재활에 엄청난 예산이 배정돼야 하는데 실상은 거의 전무하다.

다만 국립정신병원 두곳에서 정신질환의 치료예산중 일부로 알콜 중독 환자를 치료해주고 있다.

가장 1명이 중독되면 아내및 자녀 모두가 지옥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

당사자들은 자기가 중독증에 걸린줄도 모르고 애주가로 착각하며 어느날 갑자기 중독의 합병증 (치사율 90% 이상임) 으로 죽게 된다.

우리나라 중.고교 학생들의 다수는 소주를 나팔 불듯 마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고졸 이후에는 정말 엄청나게 마셔댄다.

마치 술 마시기 위해 어른이 된 것처럼. 대학생들의 음주문화는 기가 막히는 수준이다.

오죽하면 신입생 환영회때 술을 마시다 죽는 학생이 나타나겠는가.

우리나라 가정폭력 50%의 배후에 과음 남편이 존재한다.

소년원생의 35%, 학교 탈락 청소년의 12~30%, 약물중독 청소년의 40~50% 배후에 과음주나 알콜 중독 아버지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자가운전자중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률도 급상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40, 50대 사망률은 세계 으뜸 수준인데 그 이면에는 알콜이 존재한다.

알콜로 인해 아내, 청소년 자녀, 산업현장, 병원, 지하경제 등에 끼치는 영향은 가위 천문학적 수준인데 이를 예방하려는 노력은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알콜 문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룡처럼 커버렸고, 이의 퇴치를 위해서는 정부나 민간단체에서의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한 단계다.

술 공장에서 술을 생산하며 국세청에 낸 주세는 1조8천억원 (95년 기준) 이라고 한다.

같은 시기에 정부 차원에서 알콜 중독의 예방이나 치료재활 목적으로 배정한 예산은 한푼도 없었다.

다만 국립정신병원에서 알콜 중독 환자를 치료하는데 수억원이 사용됐고, 이는 주세로 걷힌 돈의 0.01~0.03%에 해당되는 비율이다.

돈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에 대한 음주 예방교육, 음주운전자에 대한 교육, 알콜 중독 등 음주폐해에 대한 연례적 역학조사, 매맞는 아내나 자녀들을 위한 피난처 제공, 40대 사망률 떨어뜨리기, 간경화나 간암으로 인한 사망률 줄이기, 임대 아파트나 달동네 등에서 뒹굴고 있는 알콜 중독 가장들의 재활치료, 알콜 관련 범죄율 떨어뜨리기, 음주운전 사고 비율 떨어뜨리기, 과음및 중독으로 인한 청소년 비행문제 해결 등 시급한 사업은 많은데 예산이 배정돼 있지도 않고, 배정될 전망도 전혀 안 보인다.

예산이 필요하다.

이런 데 쓸 돈은 일단 그러한 술이 생산되고 구매되는 현장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

술의 폐해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세 인상도 세계적 추세다.

따라서 술에도 건강기금을 부과해서 국민건강관리기금을 확대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시급한 조치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3분의1이 술의 피해권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김경빈 <신경정신과 의사,마약범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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