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테이지] 까칠한, 영리한 디바 세라 브라이트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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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영국식 억양이 씩씩한 음성에 실려 날아왔다. 1986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첫 주인공으로 주목 받은 뒤 지금껏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브라이트먼(49)이었다. ‘타임 투 세이 굿바이’ 등의 노래로 친숙한 그는 2800만장의 CD·DVD 판매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3세에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브라이트먼은 이후 댄스 그룹 ‘핫 가십’을 거쳐 26세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발레단 입단 거절, 음반 실패 등 좌절을 경험한 뒤였다. [EMI 제공]


전화 인터뷰 수락은 쉽지 않았다. “결혼 문제 등 사생활은 묻지 말 것”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음반사(EMI)가 인터뷰 내용을 같이 듣겠다”는, 예외적인 상황도 생겼다. 미국 뉴욕에 머물고 있는 브라이트먼과 영국의 EMI 본사, 한국 직원들까지 동시에 수화기를 들고 있는 진풍경이 펼쳐질 참이었다. 음반사에서 특별 관리하는 거물급 아티스트다웠다. 게다가 전화 인터뷰는 한차례 취소됐다.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 당일 모든 스케줄이 취소된 것이다.

닷새 후 전화 인터뷰에서 브라이트먼은 그토록 까다로웠던 절차와 달리 상냥한 음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지나치게 많은 일을 했나봐요. 에너지를 다 써버린 거죠.” 그는 앓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라고 했다.

◆똑똑한 프리마돈나=친절한 말투 속에는 음반 판매량 1위 디바(여신)다운 영리함이 숨어있었다. 세 옥타브를 소화해 ‘잘 올라가기로’ 유명한 그는 “데뷔 당시 혹은 전성기 때에 비해 어려움은 없느냐”는 질문을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고음이 아니라 소리의 품질”이라며 비껴나갔다. 쉴 때는 뭘 하느냐고 취미를 물으니 “쉬는 시간은 위험해요. 공연이나 노래를 하지 않으면 항상 안좋은 일이 생기던데요”라며 깔깔 웃었다. 20년 넘게 대중의 관심 속에 살면서 찾은 정답이었다.

고집도 있었다. “‘제 2의 브라이트먼’이라는 신예가 많다.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이라 물었더니 브라이트먼은 “없어요. 모든 가수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죠”라고 잘라말했다. 대형 공연을 위해 수십명 스태프와 공연 장비를 끌고 다녀 ‘군단’으로 유명한 것을 두고 “이번 내한에는 몇명의 스태프와 오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또 짧은 대답이 나왔다. “나는 그들을 스태프라고 부르지 않아요.” 그들이 영상·조명·미술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56명의 주인공’급 스태프와 브라이트먼은 다음달 13~20일 한국에서 다섯 차례 공연한다.

◆남다른 소프라노=영리하고 까칠한 ‘여왕’ 브라이트먼은 걸맞은 대접을 받는다. 까다로운 인터뷰뿐 아니다. 19일 출시된 DVD ‘심포니-라이브 인 비엔나’는 오스트리아 빈의 유서깊은 슈테판 성당에서의 공연 장면을 담았다. 862년 역사의 이 성당에서 마이크와 카메라·조명 등 각종 장비를 사용한 공연을 연 것은 브라이트먼이 처음이다. “허락이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성당 관계자와 빈 시민 덕에 ‘예외’가 생겼다. 덕분에 사람들이 성당에서 크게 박수를 치고 환호해도 되는지 어리둥절해하는 재미있는 영상이 만들어졌다. 브라이트먼은 이같은 최고의 대우를 받는 소프라노답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제 공연은 달라야해요.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는 현장이어야하죠.”

▶세라 브라이트먼 심포니 월드투어

-3월 13,14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16일 일산 킨텍스/18일 인천 송도컨벤시아/20일 부산 벡스코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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