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채권단 "부도처리 불사"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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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아문제가 벼랑 끝을 치닫고 있다.

기아로선 더이상의 자구노력은 할 수 없다고 버티는 가운데 채권단은 마침내 최후통첩을 띄웠다.

당초 기아의 채권은행단측은 1일 열린 제2차 채권단회의에서 기아지원문제에 대해 어느정도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현대.대우의 기아특수강 공동경영발표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아의 입지가 하루 아침에 달라졌고 이를 토대로 기아측이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을 강하게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항복문서" 를 받고 자금지원을 매듭지으려 했던 채권단의 이날 회의는 줄다리기를 거듭하던 끝에 무산됐다.

기아는 이날 회의를 위해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마련해 왔다.

매각할 부동산의 명세와 매각일정등을 밝히고 인력감축에 대한 노조의 동의서도 포함된 것이었다.

하지만 채권단 입장에선 이같은 자구계획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구계획의 내용이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강력히 요구해온 경영권 포기각서 (金善弘회장의 사표가 첨부된)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의를 주재한 류시열 (柳時烈) 행장은 회의 시작부터 강공을 취했다.

그는 첫 발언으로 "金회장의 입장은 이미 지난달 30일 회의에서 모두 들었다" 며 "오늘 회의는 채권금융기관의 입장을 정리하는 자리인 만큼 金회장의 발언기회는 없다" 고 못박았다.

경영권 포기각서의 제출이 없는 상태에선 기아로부터 더이상 들을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채권단 내부에서도 약간의 이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아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기아특수강의 공동경영 문제에 대한 시각차였다.

일부 채권금융기관들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이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부도유예 협약 자체가 기아문제를 상호협의하기 위한 제도인데도 불구하고 기아가 채권은행들을 제외하고 특정기업과 일방적인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채권금융기관들은 그러나 金회장의 무조건적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 요구와 관련해선 한발도 양보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경영권 포기각서가 제출되지 않는 한 추가자금 지원은 어렵다는게 채권금융기관들의 입장" 이라고 밝혔다.

결국 부도유예협약 적용을 철회하고 부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현재 상황에선 金회장의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한걸음도 나갈 수 없게 돼가고 있다.

柳행장은 회의 끝무렵에 "최고경영진의 무조건적인 경영권 포기각서는 자구계획을 이행하는 담보의 성격으로 채권단이 확보할 수 있는 최후의 담보" 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채권단이 이처럼 강경자세로 임하는 것은 주요 은행장들의 회의가 사전협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현대.대우의 개입이 채권은행단들은 전혀 모르는 가운데 진행된 것이므로 이같은 의외의 결정 내용을 자세히 파악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에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 않다.

아무튼 현대와 대우라는 재계의 거물들이 기아문제에 끼어든 만큼 오는 4일에 속개될 다음 회의까지 어떤 물밑 교섭이 이뤄질지가 주목거리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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