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에 기아쇼크 전문가들이 진단한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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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인기업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 던 정부가 결국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은특융으로 우선 금융시장의 급한 불부터 끄는 한편 사태 추이를 봐가며 기아의 향후 진로에도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해법은 두 가지다.

시장원리에 따르는 것과 정부가 앞장서 수습하는 것이다.

시장원리대로 하자면 부도를 내든가, 아니면 다른 기업에 의한 인수.합병 (M&A)에 맡겨야 순리지만 모두가 현실적으로 기대 불가능한 것들이다.

부도유예협약을 적용키로 했으나 은행들 힘으로는 도저히 사태수습이 어렵다는 것이 은행장 스스로의 고백이다.

기아에 돈을 빌려준 전체 금융기관은 무려 1백50개. 여기에다 1만5천개의 협력업체가 서로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교통정리 없이 은행차원에서의 합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나머지 해법은 정부가 나서는 것이다.

김중웅 (金重雄) 현대경제사회연구원장은 "현재 상황은 전체 금융권이 모두 불신과 불안감에 휩싸여 자칫 공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 국면" 이라며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의 자구노력에도 한계가 있으며, 막대한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금융기관들에 사태해결을 기대하는 것도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발상' 이라는 얘기다.

그는 "미국도 80년대 크라이슬러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가 나서서 보증을 서주는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면서 "개별기업 문제를 시장에 맡긴다는 것과 위기상황에 정부가 나서 사태를 수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한구 (李漢久) 대우경제연구소장은 "우리 경제는 아직 부실기업 문제를 민간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준이 아니다" 면서 "한은 특융을 비롯한 금융.세제 지원이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한 시중은행장도 "비단 기아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싶어도 부실 부담 때문에 여력이 없는 상황" 이라면서 "해외차입조차 더욱 어려워진 상태에서 정부나 한은이 손을 놓고 있으면 어쩌자는 것이냐" 고 반문하고 있다.

물론 정부개입을 경계하는 견해도 있다.

좌승희 (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그동안 정부가 부실기업 문제에 개입해 실효를 거둔 경우가 별로 없다" 면서 "이번에도 정부가 개입하면 앞으로 계속 터질 대기업 부실문제에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만큼 기아그룹 처리는 완전히 시장에 맡겨야 한다" 고 지적했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기아 스스로가 그야말로 피나는 자구노력을 통해 팔다리를 잘라내고 소위 크라이슬러식 소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금융기관들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쪽에 견해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당장의 관심사는 제일은행이 부도유예협약 대상으로 선정한 18개 계열기업들을 어떻게 솎아내는가와 경영권 포기각서및 경영진 교체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쏠릴 것이다.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예상되는 최대의 골칫거리는 극도로 부실한 아시아자동차.기아특수강.기산등의 3대 계열사에 대한 처리문제일 것이다.

이들의 빚은 4조8천억원에 이른다.

이것들을 털어내줘야 기아자동차에 대한 해법이 풀릴텐데 서로 빚보증이 얽혀있어 간단찮게 돼 있다.

손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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