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45>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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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16면

“내게 당장 돈을 가져와(Show me the money)!”
1997년 개봉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미식축구 스타 로드 티드웰이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 분)에게 당장 프로구단과 계약을 성사시키라며 수화기를 들고 외치는 대사다. 괴팍한 성격의 티드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맥과이어는 선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전화기를 붙들고 “쇼 미 더 머니”를 크게 외친다.

내게 당장 돈을 가져와!

스포츠 에이전트는 프로 선수들의 각종 계약을 주선하는 게 주 업무다. 스폰서(후원 기업) 영입은 물론 광고 계약도 에이전트의 몫이다. 때로는 선수 본인은 물론 가족의 잔심부름까지 도맡는다. 스포츠 천국인 미국에선 이런 스포츠 에이전트란 직업이 보편화돼 있다. 미국프로풋볼(NFL)엔 수퍼 에이전트로 불리는 드루 로젠하우스가 활동 중이고, 메이저리그(MLB)엔 스콧 보라스와 제프 무라드가 있다. 프로농구(NBA)의 빌 더피도 빼놓을 수 없다.

골프계에서 최고의 스포츠 에이전트를 들라면 타이거 우즈, 안니카 소렌스탐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마크 스타인버그(42)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그가 “노”라고 말하면 골프 황제도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바로 그 인물이다.

우즈는 PGA투어에 데뷔한 뒤 1년여 만인 98년 IMG에 에이전트를 교체해 달라고 요구한다. 타이틀리스트와 6000만 달러의 계약을 이끌어 낸 휴스 노턴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마크 스타인버그. 젊은 선수에게 일방적 계약을 강요하던 전임자와 달리 스타인버그는 ‘다정한 동반자’의 이미지를 심어 주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그는 우즈의 신뢰를 얻었고, 10년이 넘도록 우즈 팀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고객에게 거액을 벌어준 대가로 본인 역시 세계적 스포츠 에이전시인 IMG의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스타인버그가 꼽는 스포츠 에이전트의 최고 덕목은 정직과 성실이다. 스타인버그는 “고객에겐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만 ‘예스맨’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NFL 수퍼 에이전트인 드루 로젠하우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7년 필자와 인터뷰를 했던 그는 “고객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고객이 원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하고, 어디든지 간다. 살아남기 위해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프로 스포츠의 규모가 커지면서 국내에도 스포츠 에이전시들이 활동하고 있다. IMG 이외에도 세마 스포츠 마케팅, 스포티즌, IB 스포츠 등이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최근 골프 스타 신지애(21)가 2년여간 함께 일했던 스포츠 에이전시 티골프 스튜디어와 결별하고 세마 스포츠 마케팅으로 적을 옮겨 화제가 됐다. 신지애가 돌연 에이전트를 교체한 것은 하이마트와 후원 계약이 끝난 뒤 새로운 스폰서를 찾지 못한 데 대한 문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신지애는 에이전트를 바꾼 지 1주일여 만에 국내 한 증권사와 해마다 10억원을 받는 대형 계약을 했다. 신지애가 대형 계약을 한 것이 선수 본인의 힘인지, 에이전트의 능력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에도 제리 맥과이어가 출현하지 말란 법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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