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 표준소매가 낮췄더니 소비자값은 되레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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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약의 표준소매가가 내렸는데 소비자들이 실제로 사 먹는 가격은 거꾸로 오르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13일 제약업체들로 하여금 우황청심원.쌍화탕등 72개 의약품의 표준소매가를 4.9~66.4% 내리도록 조치했는데 그후 전국 대형약국을 중심으로 실제 소비자가격은 일제히 올랐다.이런 현상은 동네 소형약국으로도 파급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약값 거품을 빼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취해진 정부의 의약품가격 인하조치가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현황=광동제약은 우황청심원 표준소매가를 한알당 5천2백원에서 4천4백원으로 15.3% 인하했다.

그러나 서울 종로5가.남대문등에 있는 대형약국(전국에 5백여개)에 대한 광동의 우황청심원 공급가는 거꾸로 1천5백~1천6백원에서 2천원으로 인상됐다.이에 따라 이들은 손님에게 파는 가격을 1천8백~2천원에서 2천2백~2천3백원으로 올려 받고 있다.광동은 우황청심원 공급가를 2천5백원으로 인상할 계획이라 소비자가격은 다시 뛸 전망이다. 이밖에 ▶표준소매가가 36.3% 내린 조선무약 쌍감탕F(75㎖)의 소비자가격은 1백50원에서 2백50원으로▶표준소매가가 5.1% 낮아진 선경제약 기넥신F정(40㎎)은 2만3천원에서 2만5천원선으로 각각 올랐다.

표준소매가가 인하되지 않은 품목까지 덩달아 인상되고 있다.동화약품 까스활명수의 소비자가격이 66.7% 오른 것을 비롯해 일동제약 아로나민골드,대웅제약 우루사F,동아제약 판피린등 유명 의약품들의 값이 급등했다.

◇원인=보건복지부 고시에는 약을 공장도가(표준소매가의 70%) 이하로 파는 약국은 영업정지,공장도가보다 20% 이상 싼 가격으로 약국에 공급하는 제약업체는 표준소매가 인하조치를 취하도록 규정돼 있다.때문에“표준소매가를 4천4백원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국공급가를 공장도가의 80% 수준인 2천5백원까지 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광동제약측의 설명. 표준소매가가 인하되지 않은 품목의 경우 정부가 표준소매가와 소비자가격간 격차가 지나치게 큰 제품에는 강경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보이자 메이커들이 미리 공급가를 올려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점=정부의 무리한 가격정책과 표준소비자가격을 지나치게 부풀려 적는 제약업체 모두가 문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표준소매가 따로,실제 소비자가 따로인 현상을 바로잡자는 취지는 좋지만 정부가 가격을 시장자율에 맡겨 두지 않고 일일이 규제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싼 값에 약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됐다”고 지적했다.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결과적으로 약값 인상을 부추긴 꼴이 되긴 했지만 표준소매가는 터무니없이 비싸게 붙여 놓아 약국마다 값이 천차만별인 가격질서 문란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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