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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다룰 민간기구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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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는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복무 문제를 안보에 대한 지나친 불안과 병역 거부에 대한 확산 우려를 내세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황의 불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치열했던 제1, 2차 세계대전 중에 북미와 유럽의 많은 선진국은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적극적인 연구와 폭넓은 대화를 통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시행까지 했다.

놀랍게도 소련의 공산당 혁명가 레닌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3.1운동이 일어나기 두달 전인 1919년 1월 4일 1차 세계대전 상황 아래에서도 '종교에 의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병역 면제'를 선포하고 11년 이상을 시행했다. 아울러 2차 세계대전을 치른 독일 역시 49년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기본법을 제정했다.

작은 소견이지만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한 몇 가지 해결책을 나누고자 한다.

첫째, 병무청 혹은 군인을 징집하는 부서를 국방부에서 분리시키는 문제도 고려해볼 만하다. 즉 병무청을 국회의 산하 기구로 예속시키고 모든 예산과 주요 행정 결정권도 국회가 갖는다. 현재 미국의 병무청도 국방부와 무관한 독립부서로서 국회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연간 25억달러의 예산과 민간인 군인 관료 등으로 구성된 150명 이상의 직원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분리의 장점은 병무청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대학에 가서 병역 문제를 홍보하기도 하고 자녀를 둔 부모들과 폭넓은 상담까지 할 수 있어 병역의 문턱을 낮추고 징집의 민주화를 유도할 수 있다.

둘째는 종교에 의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 혹은 공익근무를 담당할 민간기구를 설치하는 일이다. 우선 종교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범종단적인 민간 대체복무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종교단체들과 정부가 협력해 기금을 마련하고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심사는 징집부처 요원과 각 교단의 성직자들이 직접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의 종교적 병역 거부의 대부들인 역사적인 평화교회들, 즉 메노나이트.퀘이커.형제회가 힘을 모아 대체복무를 위한 민간 공익봉사기구(CPS)를 제안해 국회와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40년부터 시행됐다. 한국전쟁 발생 이듬해인 51년부터 71년까지 메노나이트 교단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 21명이 자비로 대구의 경산과 여러 지역에서 전쟁고아를 위한 직업교육, 농민개혁사업, 영어 교육, 의료사업 등 구제사업에 참여해 대체복무를 하고 갔다.

셋째는 일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자비 부담 형식의 대체복무 혹은 공익근무를 담당할 민간기구를 설치하는 일이다. 재정은 개인.정부.사회단체들이 마련하고 선별은 정부와 민간기구의 전문가들을 통해 확고한 양심적 거부자들을 선별하면 된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 기간이나 봉사활동 등은 현실에 맞게 충분한 국민적 수렴을 거치면 된다. 아울러 역사적인 평화교회들이 세계 곳곳에서 비종교적인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과 힘을 모아 비평화적인 정부의 징집정책이나 사법제도를 향해 적극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여호와 증인들도 교리적인 틀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넷째로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식전환이다. 전쟁의 가능성에 집착해 북한을 지나치게 군사적 대응의 상대로만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평화적 추구의 파트너로 보는 자세도 중요하다. 그리고 정부는 군인에 대한 부정적인 전투적 고정관념을 친근한 공익추구의 관념으로 전환시켜 줄 필요도 있다. 아울러 비전시체제 아래에서 공익봉사를 하는 비전투요원을 늘려 자비 해외 평화봉사단 요원으로 파견시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에 대한 평화적인 이미지를 심는 것은 안보문제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상진 평화나눔공동체 대표. 재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