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과외를 그만두지 마라' 김기수 교수 - 우리 교육현실의 허와 실 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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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사교육비만 1년에 11조원이라 한다.유명 입시학원 원장들이 탈세혐의로 구속되는등 각종 교육비리를 둘러싼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최대 병인은 과외.수능시험.종합생활기록부.논술시험.면접등도 크게 보면 과외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다.이런 가운데 과외만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출간돼 관심을 끈다.캐나다 메모리얼대의 김기수(교육학)교수가 최근 펴낸 '아직 과외를 그만두지 마라'(민음사刊)가 그것.우리나라 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은 김교수가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고국을 방문,1년간 한국 교육계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우리 교육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을 적은 것이다.

김교수는“입시를 앞둔 자녀도 없고,교육정책에도 참여한 적이 없는 중립적인 교육학자 입장에서 입시문제를 적었다”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먼저 저자는 과외가 입시경쟁을 과열시킨다는'상식'을 뒤집는다.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과외라는 편법이 동원된 것이지 과외 때문에 경쟁이 가열되는 것은 아니라는게 김교수의 주장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과외를'죄악시'하고 입시학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이런 현실에 대해 저자는 문제의 핵심은 들춰보지 않고 겉만 관찰한 결과라고 풀이한다.모든 교육문제는 대학입시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저자는 문제의 원인을 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통제와 입시 독점 관리에서 찾는다.

우리나라 수험생들은 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시험 등으로 이름만 바뀐'국가시험'을 치르지 않고는 대학에 갈 수 없다.국립 서울대에 지원하는 학생이나 전문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이나 모두가 똑같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 유치원때부터 머리를 싸맨다.따라서 입시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대학지원 희망자와 대학 당국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선택하는'자유거래'원칙을 제시한다.예를 들어 전자통신분야를 강조하는 대학에서는 컴퓨터 실력을 입학의 척도로 삼으면 학과공부에 흥미없는 학생이라도 얼마든지 적성을 살릴 수 있다.

저자는 한마디로 신입생 선정방법이나 대학운영에 정부가 일절 간섭하지 않고'자연상태'로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지금처럼 정부가 국립대학을 설립해'일류대학'이라는 인기대학을 유지하고 학과 설치및 학과별 학생 정원을 엄격히 통제하고 등록금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어쨌든'자연상태'에서는 경쟁이 일어난다 해도 일부 우수학생만이 특정대학과 특정과에 입학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데서 그치고 모든 학생이 한가지 시험에 매달리는 과오에서만은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게다가 대학들은 저마다 특성을 개발해 수험생을 끌어들이게 되고 지금까지 국립.사립,서울.지방등으로 나뉜 대학서열도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부는 최근 4차 교육개혁안에서 경쟁을 줄이려는 방편으로 수능시험 등급간 점수차를 늘리고 과외단속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다고 밝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근본적 원인을 간과한 일시적.국부적 처방은'필요악'인 과외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을 낳을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홍수현 기자

<사진설명>

97학년도 대입 수험생들.과외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입시에

종합생활기록부와 논술시험 등을 동원했지만 실효를 얻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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