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진짜 같네 '영화 같은'코미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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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란 허구의 장르, 그러니까 관객이 알고도 속는 거짓말이다. ‘매직아워’는 이 거짓말을 공공연히 끄집어내 한바탕 소동극을 빚어낸다. 영화 속 영화를 실제라고 여기는 극 중 배우의 오버 연기가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두목의 여자와 밀애를 나누다 덜미가 잡힌 빙고(쓰마부키 사토시)는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한다. 두목이 만나고 싶어 하는 남자, 데라 도가시와 잘 아는 사이인 척해 버린 것이다. 알고 보니 데라 도가시는 누구도 얼굴을 모르는 전설적인 킬러다. 진짜를 찾아낼 도리는 없고, 목숨은 구해야겠고…. 빙고는 꾀를 낸다. 무명의 액션배우 무라타(사토 고이치)를 데려와 두목에게 데라 도가시라고 소개한다. 무라타는 신인 감독을 자처하는 빙고의 거짓말에 넘어가 이 모든 상황이 영화 촬영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주인공인 킬러로 캐스팅됐다고 생각한다. 웃음이 터지기 시작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한껏 과잉된 연기를 선보이는 무라타와, 이를 킬러다운 대담무쌍함이라고 감탄하는 두목의 반응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각본을 겸한 감독 미타니 고키는 브라운관, 연극 무대를 오가며 코미디로 실력을 쌓아 온 재주꾼이다. 영화 데뷔작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997년 작·한국 개봉은 2001년)는 한국 관객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줬다. ‘매직아워’는 데뷔작에 비해 기발함은 떨어지되 일본 내 흥행 감독으로 입지를 굳혀 온 그의 솜씨를 확인하기에는 족하다. 관객이 보기에 뻔한 거짓말, 그래서 이내 들통 날 법한 거짓말을 웃음으로 전환하는 호흡이 뛰어나다. 무라타를 연기하는 배우 사토 고이치의 오버 연기는 위기를 웃음으로 무마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매직아워’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자, 영화에 대한 애정 고백을 담뿍 담고 있다. 실상을 알게 된 무라타는 실망하지만 마음을 고쳐먹는다. 필름에는 기록되지 않을망정, 필생의 연기를 보여 주겠다는 결심으로 빙고의 새로운 계획에 동참한다. 영화 속 영화라는 거짓말은 이제 무라타의 진심이 된다.

그의 연기 열정을 통해 관객의 감동을 끄집어내겠다는 의도가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영화의 후반부는 호흡이 느리게 느껴진다. 이를 상쇄하는 것이 막판의 아날로그 특수효과다. 무라타가 친한 스태프를 총동원해 준비한 액션용 특수효과를 써 보지도 못하고 이야기가 막을 내리나 싶을 즈음, 전혀 엉뚱한 효과로 한바탕 웃음이 연출된다.

보고 있노라면, 한국에서 만들었더라면 하는 가정법이 자꾸 떠오르는 영화다. 영화 속 영화를 코미디 소재로 활용한 아이디어와 솜씨가 탐난다. 대신 영화에 인용되는 감독과 배우가 낯설어 영화의 유머가 덜 차지게 전달된다. 올 초 83세로 타계한 일본의 거장 감독 이치카와 곤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이 영화가 헌사를 바친 대상이기도 하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a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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