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청, 누군 벌주고 누군 봐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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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업자 이춘수(55·가명)씨는 4월 그동안 해 오던 ‘고추 다대기(다진 양념)’ 수입을 중단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5월부터 고추 다대기와 같은 고추 함유 식품에 천연색소 사용을 금지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5월 이후에도 국내 시장에는 여전히 색소를 넣은 고춧가루가 넘쳐났다. 식약청이 단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9월까지 중국에서 수입된 고추 다대기는 3만7010t이지만 고춧가루는 300t에 불과했다.

식약청 담당자는 “파프리카 색소와 고추의 성분이 같아 분석할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씨는 “색소를 넣은 다대기는 눈으로도 구별된다”며 “법을 지킨 업자들만 손해 본다면 누가 정부의 정책을 믿겠느냐”고 말했다. 식약청이 규제안을 발표해 놓고 단속하지 않는가 하면, 법 위반 정도가 비슷한 업체에 대해 엇갈린 행정처분을 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심지어 중금속이 들어간 불량 한약재를 수입·제조한 업체를 한약재 품질검사기관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식약청은 식품·의약품의 인·허가권뿐만 아니라 감독권까지 있는 영원한 갑(甲)이기 때문이다.

◆행정은 이중 잣대… 검사는 부실=대웅제약은 지난달 말 자사의 비만치료제 ‘엔비유’를 6개월간 팔지 말라는 식약청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대웅제약이 다이어트 캠페인을 하면서 인터넷에 ‘I eNVy yoU’라는 배너 광고를 한 것이 문제였다. 소비자가 전문 의약품인 ‘엔비유’를 떠올릴 수 있게 광고했다는 이유였다. 현행법상 전문 의약품은 대중 광고가 금지돼 있다.

같은 시기 다국적 제약사인 화이자도 대중 광고 논란에 휩싸였다. 한 무료 일간지가 ‘가짜 비아그라를 찾아라’라는 이벤트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식약청은 이에 대해 “조사해 봐야 한다”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식약청이 간질이나 당뇨·감기 치료제를 비만약으로 둔갑시켜 홍보한 업체에 대해서는 광고정지 6개월의 처분을 했다”며 “캠페인 홈페이지에 제품명을 연상시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판매정지 6개월의 처분을 한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식약청은 올 상반기 한약재 품질검사기관으로 13개 업체를 지정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5곳이 불량 한약재를 수입·제조하다 한 차례 이상 적발된 곳으로 나타났다.

◆“관심 사각지대서 재량 커진다”=식약청은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기관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식약청은 독립된 외청이기 때문에 자체 인사와 감사권을 갖고 있다”며 “사실상 감사원이 유일한 감독 기관”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의 인·허가권과 감독권을 가지고 있지만 감사원 이외에는 감시감독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부족한 것도 원칙없는 행정의 이유로 꼽힌다. 한 식약청 간부 출신은 “석사급 이상 직원이 늘긴 했지만 약사에 편중돼 있고 주요 결정에서 전문가의 판단보다는 여론에 휘둘린다”고 말했다. 전체 직원 1443명 가운데 의사는 11명인데 약사는 250명이 넘는다. 이런 구조는 업계와의 유착을 낳는다. 식약청장이 화장품 회사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다 적발되는 일이 벌어질 정도다. 봐주는 기업이 나올 수도 있고 밉보이는 기업이 생길 수 있는 구조다.

김창규·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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