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文化의경제학>1.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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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21세기를 문화 르네상스의 시대로 진단한다.예술이 스포츠를 대체하고 대중이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우선순위에서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상품을 팔려면 먼저 문화를 팔 아라」는 말은 상식적인 얘기가 된지 오래다.21세기「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문화산업은 그 자체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파급효과도막대하다.선진국들이 영화.가요.뮤지컬등 대중문화에 돈을 쏟아붓는 것도 그 때문이다.이에비해 우리의 대중문화산업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이에따라 본지는 우리 대중문화산업의현주소를 세계의 문화산업과 수치.계량화를 통해 비교.진단하고 21세기 문화전쟁에 대비할 전략을 모색해보는 「대중문화의 경제학」을 매주 연재한다.
[편집자註] 서울에서만 1백1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국영화사상 흥행 1위를 기록한 『서편제』의 공식적인 수입은 38억1천6백20만원이다.자동차 1백70만대를 수출해야 벌수 있다는 돈(4억7백만달러)을 영화 한편으로 벌어들인 『ET』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그러나 『서편제』의 제작비는 광고비 1억5천만원을 합해도 불과 8억원.이 액수를 1년 남짓 굴려 32억원의 순수익을 올렸다면 정말 해볼만한 사업 아닌가.영화제작에 뛰어드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꿈을 꾼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사업이 아니고 도박이다.한명의 승자를 위해 여러명의 들러리를 필요로 한다.그 승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영화의 수입원은 관람수입+비디오판권+공중파방송판권+유성방송판권+해외판권으로 구성된다.관람수입은 관람권가격 6천원에서6%의 문예진흥기금을 빼고 여기에서 부가세 1할을 뺀 나머지 수입을 영화사와 극장이 반씩 나눈다.
비디오는 계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개당 1만원정도.공중파방송 판권은 『투캅스2』같은 대작이 2억~2억5천만원 정도고 10만~15만명 정도 관객을 동원한 중급이 3천만~7천만원정도다.유선방송은 5백만원에서 1천5백만원 정도 가 보통이며 해외판권은 수출사례 자체가 드문 편이다.이 수입명세안에서 10억원을 들여 본전을 뽑으려면 전국기준 20만관객(4억~5억원)동원에 비디오 5만개(5억원)가 나가야 한다.저예산영화를 뺀 요즘의 한국영화 제작비는 10억~15 억원선.쉽게 생각해 20만~33만명을 동원해야 본전이다.
그러나 25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는 1년에 평균 5~10편.성적이 좋았다는 지난해의 경우가 전체 제작편수 61편 가운데 10편이다.
지난해 전체영화 관람객수는 4천5백13만여명.이중 한국영화 관객은 20.9%인 9백44만여명으로 편당 14만5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한 셈이다.9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편당 관객동원수는15만명선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이 수치를 한국영화의 현실적인 시장규모로 보고있다.그랬을때 한국영화 편당제작비는 6억원선이어야 본전이다.그러나 이 돈으로 번듯한 흥행영화를 만들수 있는 제작자는 천재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지독한 사랑』을 제작해 본전을 한 시네2000의 이춘련 대표는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장르인 멜로물을 줄이고 줄여 투자한 돈이 12억원』이라고 말한다.『본투킬』같은 액션물이나 『은행나무침대』처럼 특수효과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은 15억원을 가볍게 넘어간다 .
투자액.승률만 따지면 한국영화는 갈수록 베팅이 센 도박형태로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90년 들어한국영화계는 도박에서 산업으로 서서히 탈바꿈해왔다.여기에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 대기업의 영화사업 진출이 다.
80년대 중반 이미 비디오사업에 뛰어들어 시장의 80%를 장악하면서 영상사업의 발판을 마련한 대우.삼성.SKC는 90년대들어 영화제작에도 착수했다.
현재 대우.삼성.SKC를 비롯,벽산.해태.한보.미원등 10여개 대기업이 영화사업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또 지난해부터는 신보.일신.장은등 창업투자회사까지 영화제작에 나서 현재 대기업의 자본으로 제작된 영화는 60여편에 이른다.
이런 대기업 자본의 유입으로 나타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기획과 제작의 분리현상이다.이전에 충무로 영화사들이 직접 돈을대 만들던 방식에서 기획사는 영화를 만들고 대기업은 돈을 대는방식으로 이원화된 것이다.지금 한국영화의 제작 은 주로 이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이 경우는 흥행수익에서 제작비를 뺀 나머지 수익을 기획사와 대기업이 일정비율로 나눠 가지고 적자분에 대해서는 기획사의 책임은 면제된다.
자본주로서 흥행 위험부담을 고스란히 져야 하는 대기업도 아직까지는 영화제작 자체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대기업의영화제작 대조표는 다른 관점에서 작성돼야 한다.대우.삼성의 영화사업은 그 자체의 이익사업으로서가 아니라 종합 영상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즉 VCR등 하드웨어 생산→비디오시장 장악→영화소프트웨어 확보→유선.위성방송 진출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시너지효과를 내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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