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귀향, '백남준 아트센터' 문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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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1932~2006)은 전 세계에 그 이름이 통하는 유일한 한국 예술가였다.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이자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로서 그가 일군 예술적 성취와 명성을 뛰어넘을 만한 한국 출신 예술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의 이름이 지어지지 않았을 때 예술계가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을 떠올리며 ‘백남준 국제공항’을 희망한 것은 그가 비디오 아트의 칭기즈칸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까지는 살아야 내 예술적 욕심을 웬만큼 채우겠다”던 그가 간 지 2년8개월. 생전에 스스로 명명한 ‘백남쥰이 오래 사는 집’-백남준 아트센터가 10월 8일 문을 연다. 84년 지구촌에 쏘아올린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두고 “염라대왕 앞에 가서도 자랑할 수 있다”고 했던 우상 파괴자이자 큰 무당인 그를 기린다.

백남준은 세상 앞에 장난꾸러기 어린애처럼 서 있었던 사람이다. 삶을 받아 들고 그 운명에 덩더쿵 춤을 춘 큰 무당이었다. 자신의 비디오 아트 작품에 ‘범지구적인 한판 놀이(글로벌 그루브)’라는 제목을 붙일 만큼 통이 큰 예술가였고, 당뇨병 후유증으로 한쪽 시력을 잃었을 때도 “일목요연, 외눈깔이라 더 잘 보인다”고 농으로 웃어넘기는 유쾌함을 지닌 거인이었다.

8일 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경기도 용인시 상갈동 85번지 ‘백남준 아트센터’(관장 이영철)에 들어섰을 때, 어느 구석에선가 “굿모닝” 하며 백남준 선생이 걸어 나올 듯 건물 자체가 백남준의 복잡 미묘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디오 작업으로 선(禪)을 수행했고, 첨단 테크놀로지로 우상 파괴를 시도했던 그를 서구인들은 “한국이 세계에 준 선물”이라고 부를 만큼 사랑했다. 개관에 맞춰 국내 첫 외국인 큐레이터로 일하게 된 토비아스 버거(39) 학예실장은 “독일과 유럽에서 백남준은 ‘국민 예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인기”라고 전했다.

백남준의 귀향을 축하하는 개관 기념 페스티벌 ‘나우 점프(NOW JUMP)!’는 “지금 여기서 팔짝 뛰어보라”는 백남준식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서구예술의 우월주의에 맞서 뚝심으로 ‘백남준표 예술’을 밀고 나간 그는 아시아와 한국 문화의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었다. “한민족은 기마민족의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기보다는 밖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던 그는 그런 믿음을 그대로 실천한 예술의 유목민이었다. 이영철 관장은 “시각적 작품으로 남아 있는 후기의 비디오 아트보다는 우리에게 덜 알려져 있으면서도 미술사적으로 훨씬 중요한 초기 행위예술에 초점을 맞춰 백남준 연구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고 설명했다.

미술관 안 미술관, 미술관 옆 미술관
120일간 계속되는 ‘나우 점프!’는 백남준 아트센터 전관과 이웃한 ‘지앤 아트 스페이스’, 신갈고등학교 체육관을 이어 펼쳐진다. 독일 여성 건축가 크리스텐 셰멜이 설계한 초기 아트센터 모습에서 많이 변형된 건물은 관람객이 입장한 뒤 전시장 안에서 안으로 이동하며 공간 속 공간을 발견하는 재미를 주고 있다. 또 건축가 조성룡씨가 설계한 ‘지앤 아트 스페이스’는 백남준 아트센터로 오르는 골목길 구실을 하면서 일종의 마을을 형성해 관람객을 끌어 모으는 효과를 내고 있다. 조성룡씨는 “아트센터 위에서 내려다보면 옛 초가지붕이 그렇듯이 거북 등 껍데기처럼 모습이 드러나도록 의도했다”고 소개했다. 백남준 아트센터를 둘러본 뒤 일종의 사랑방처럼 쉬고 얘기를 나누며 작은 전시회를 즐길 수 있는 거리가 저절로 만들어진 셈이다.

이영철 관장은 “비디오 아트만 죽 늘어선 전시회가 아니라 이곳 저곳에서 수시로 행위예술이 벌어지고 관객과 상호 소통하는 작품이 많기 때문에 한 번 와서 휘 보고 끝나는 여느 미술관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보고 또 봐도 다시 새로운 작품이 등장하는, ‘백남준처럼 엉뚱한’ 미술관이 탄생했다. 자세한 일정과 교통편 등 문의는 031-201-8522(www.njpartcenter.kr).

글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 자료 제공 백남준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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