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主題를찾아서>에로스인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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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성(섹스)은 삶의 건강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삶을 공포와 부패 속으로 몰아가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이러한 현상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진정한 의미에서 문화의 수인(囚人)이 되고만다.
억압적인 성문화 속에 갇힌 인간의 모습만이 남기 때문에 불필요한 외설 시비도 일어난다.
20세기초 프로이트 심리학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성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늘날 서구는 누적된 억압에 대한 반발로서 극단적인 성 현상의 노출을 보이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프로이트가 설정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푸코의 성 논의도 마찬가지다.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가 남태평양의 원주민들로부터 배운 성은 「사랑의 관습」이었다.
자연스러운 남녀관계 속에서 애정으로 공유하는 성문화가 서구출신의 인류학자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성 금기의 문화적 통제를 파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말리노프스키의 성문화론은 외로운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자연과학의 경계가 거추장스러운 21세기에 성 현상은 편의상 분리된 기존 학문의 삼분체계(三分體系)를 타파할 수 있는 강력한 주제로 등장할 것이다.
학문과 예술이 한통속으로 인간의 삶을 그리는데 있어서 가장 확실한 주제가 성문화일 것이다.
성은 이미 생물학적으로 부여받은 육체를 통해 삶의 극치인 성적 사랑의 개념인 에로스를 완결시킴으로써 인간이해에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인도.중국.신라.잉카.마야,그리고 이집트등으로부터 발굴된 자료들에 대해 역사적 분석과 문화적 해석이 에로스 인류학의 기초를 이룰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앞으로의 에로스 인류학은 우리 자신들의 성행위에 대한 대화체 진술의 집적이다.
그 과정이 삶을 우리 스스로 얽어맨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첩경이자 인간의 발견이다.
한편 사이버섹스가 늘어나는 만큼 미래의 가상시대에 고독공포증으로부터 인간을 느끼게 하는 길은 욕정과 사랑이 결합된 에로스의 철저한 구현으로 다가온다.
생물문화적 연구의 발전에 힘입은 에로스 인류학은 사이버 시대에 인간 재발견의 실천을 선도할 것이다.
전경수 서울대교수.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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