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윤회 속의 나를 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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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어떤 정신과 의사는 환자들에게 전생요법(前生療法)을 쓴다고 한다.신경쇠약이나 우울증환자가 있을 경우 최면상태에서 전생으로 더듬어 들어가게 하고,자신의 전생을 보게 함으로써 병을치료한다는 것이다.
그 의사나 환자는 전생을 확신하고 있지만 최면학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전생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최면 속에서 보는 것은 전생이 아니라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영국의 한 학자는 일찍부터 우리에게 전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려고 한바 있다.미국의 학자들 가운데도 전생을 굳게 믿는 이들이 있다.그러나 형상(形象)으로 전생을 드러내 보여줄수는 없다.전생은 형상세계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전생이 있거나 말거나 또는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사람은 최면상태에서 자신이 무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고,그것을 봄으로써 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설사 최면상태에서 보이는 것이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이전 업( 業)이나 축적된 의식과 무관할 수 없다.사람은 환상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보고,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비디오를 이용해 주의가 산만한 어린이들을 차분하게 만든경험이 있다.어린이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비디오로 촬영해 법회시간에 보여주었다.어린이들은 각자의 행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비디오 촬영이 반복될수록 몸가짐을 다듬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요즘 일본으로부터 갖가지 성격개조 프로그램이 수입되고 있다고 한다.그 가운데 하나가 성격형성의 원인을 찾아들어가는 것이다.그런데 그 방법이 피교육자들을 약오르게 한다.가령 피교육자에게 이기심이 있다고 치면 그 뿌리를 어린 시절의 가난,형제간의 미묘한 시기심,부모에 대한 반항,또는 다겁생래의 악습에서찾는다. 교육자가 피교육자의 아픈 곳을 찌르고 들어가면,피교육자는 표면적으로 그것을 부정한다.교육자에 대해 증오심을 갖기까지 한다.그러나 이런 식으로 잘못된 성격의 원인들을 파헤치다 보면 피교육자의 문제점과 원인,그리고 개선책들이 드러난다 .단시일 안에 성격이 고쳐지지는 않지만 고칠 방향을 잡게 된다.
한데,석가가 전생을 보라고 하는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윤회에 빠져 있다.오늘은 어제를반복하고,금생은 전생을 반복한다.나에게서 반복이 계속되기도 하지만,남의 생로병사(生老病死),남의 생주이멸(生 住移滅),남의성주양공(成住壤空)을 복사(複寫)하기도 한다.
나의 전생을 보는 것은 모든 사람의 욕망과 성취와 부서짐,그리고 죽음을 보는 것이다.10년이나 20년을 토막내어 보면 집착(執着)이 생기지만 1백년이나 1천년을 한꺼번에 보면 큰 슬픔이 생긴다.나와 남에 대한 깊은 연민(憐憫)의 마음이 생긴다. 다겁생래로 나와 남을 반복하다 보니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다.이 반복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모든 남 속에 내가 들어 있다.남의 성취가 바로 나의 성취고,남의 슬픔이 바로 나의 슬픔이다.석가가 윤회로부터의 탈출을 가르치지만 형상적으로 반복을 벗어날 수는 없다.단지 그 반복의 실상을 여실히 봄으로써 윤회 속에서 참다운 나를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이것이 바로 해탈이아니겠는가.
어느 날 제자인 혜가가 스승인 달마선사를 찾아가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십사고 부탁했다.달마선사는 문제되는 번뇌를 남김없이 가져오라고 말했다.혜가가 곰곰 생각해보니 삶 전체가 번뇌로돼 있는 것이 아닌가.특별히 어떤 부분의 번뇌를 떼어낼 수 없었다.파도를 다 건져낸다는 것은 호수의 물을 모두 퍼내야 하는것과 같기 때문이다.그러자 달마선사는 『너의 번뇌는 이미 다 소멸되었다』고 말해줬다.혜가는 번뇌뭉치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석지명 청계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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