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분쟁.국회대립등 '우리가 옳다'의견광고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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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광고는 상품의 선전수단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이익단체간의 의견대립으로 인한 분쟁이 잦아지면서 각자의 입장을 여론에 알리는 수단으로 애용되는 것도 바로 광고다.
최근의 한.약 분쟁은 물론 국회 개원을 둘러싼 정치권의 설전(舌戰)도 광고전으로 확산되고 있다.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는 한약조제시험을 둘러싼 상반된 입장을 연일 신문광고를 통해 쏟아내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국민을 우롱하는 엉터리 시험을 즉각 중단하라」「한약조제시험 예상문제 여러분도 한번 풀어보시겠습니까」라는카피로 시험의 부당성을 꼬집었다.그러자 대한약사회는 「한약값 거품을 없애고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면서 「약사가 받은상처,그 누가 보상합니까」라고 맞받아쳤다.약사회는 특히 한약조제시험이 끝나자마자 거의 매일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내보내면서한의사협회를 몰아세우고 있다.
또 국회 개원을 놓고 여야가 정면대치한 가운데 신한국당은 지난 9,10일자 10개 중앙일간지 하단에 「이제 낡은 정치는 청산되어야 합니다」라는 주제의 광고로 야권에 선제공격을 퍼부었다. 이처럼 특정사안을 놓고 자신들의 견해나 주장을 광고에 담아 여론에 호소하는 광고를 「의견광고」라 한다.
이같은 의견광고는 1905년 을사조약을 반대하다 자결한 민영환의 죽음을 애도한 「사민조회소」의 광고가 대한매일신문에 12월1일자로 실린게 효시다.이 광고는 그후 최남선.신규식등이 잇따라 게재하면서 1년간 지속돼 당시 민심을 주도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던 것이 지난 88년 민주화 바람을 타고 다시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문화방송노조의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국제그룹복권추진위원회의 「진상을 밝혀라」,남북통일북진대행진추진위원회의 「노태우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김일성 주석께 드리는 공개서한」등이 그것.그동안 소외당했던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가 민주화 운동과 함께 의견광고를 통해 터져나왔던 것이다.
90년대 들어서는 이해가 대립되는 집단끼리 논리싸움을 벌이거나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요즘에는 의견광고가 홍수를 이루면서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무차별 비방까지 등장하고 있어 우려의 시각도 만만찮다.한국광고연구원의 김민기(金敏基)원장은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반감으로 표현의 자유에만 집착한 나머지 광고의 내용이 거칠어지는 경우가 적지않다』면서 『다양한 의견 표출과 합의를 존중하는 본연의 기능을 되찾아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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