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부자는 왜 빈둥거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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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들은 왜 학교를 안가고 빈둥거리는고.』 『머리를 박박 깎은 모습도 민망스럽고,무기한 농성.무기한 파업의 비정상적 상황전개도 부담스럽습니다.거기다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게 아니냐는 눈총도 받기 싫고,요즘 같아선 정말 학교 갈 마음이 안납니다.
』 『지금 아들이 용맹정진 하며 탐구하는 종합의학은 의학의 아버지라는 히포크라테스와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창시자인 이제마(李濟馬)선생님,이 두분의 위대한 사상을 접목시키는 역사적인 실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그러니 어서 학교에 나가 해 부학도 배우고 침술(鍼術)도 배우도록 해요.』 『덩샤오핑(鄧小平)개혁하의 중국에서도 양의(洋醫)와 한의(漢醫)를 통합했다고 하더군요.』 『거기서는 무의촌(無醫村)해소의 한 방편으로 그런 것이지,동서양의 의술을 통합하려는 우리의 심오한 의지와는 달라요.』『한약 조제사 자격시험에 응시자의 97%가 합격하고 그 숫자가무려 2만3천여명에 이른 사실을 놓고 말이 많습니다.』 『한의학 출제교수는 퇴장하고 양의학 교수는 자리를 지킨 결과지,뭐 다른 의미가 있을까.틈새를 노린 측은 언제나 성공하는 법이라는사실을 잊지 말도록.』 『시험에 사슴뿔이 녹용이냐고 묻는 문제가 출제된 사실을 두고 이것이 국민의 생명을 다룰 자격을 얻는시험문제일 수 있느냐는 말도 무성합니다.그런가 하면 수익이 좋은 한방시장을 8천7백명이 차지하고 있다가 갑자기 2만3천명이추가로 불어나니까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저 난리라는 비난도 있습니다.동서양의 의술에 통달한 진정한 한국형 의료인이 되고픈이 아들은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아버지.』 『갈수록 꼬이는 한.약분쟁,이리 얽히고 저리 얽혀 도저히 풀수 없는 난제,이런 문제를 잘 처리하는 분은 딱 한분 뿐이다.어서 가서 알렉산더 대왕을 모셔 오너라.고르지아 지방의 얽힌 실타래를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푼 분은 그분 밖 에 없느니라.』 □ 『그런데 아버지는 왜 국회에 안나가시고 집에 계십니까.올 1월 잠깐 임시국회가 열리고 벌써 다섯달째 우리 국민은 「무의회(無議會)」상태를 겪고있습니다.4.11총선이 끝난지도 두달이 지났고요.막강한 권한을 지닌 국회가 이렇게 놀고 있으면 민의가 무중력(無重力)상태에 빠진 것이고,그것은 국민정서를 크게 해칩니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아들아.』 『무리한 원내 과반수 채우기가 애당초 문제의 시초였지만 그것을 원상복귀시키라는 요구도 무리인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3金이 정국장악을 위해 국회를 무력화시킨다는 얘기가 파다해.거기다 내년 12월을 겨냥한 기(氣)싸움,밥그릇 싸움이기 때문에 서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아무래도 집에서 좀 더 빈둥거릴 팔자 같구나,아들아.』 『GNP 1만달러 시대에 웬 밥그릇 다툼입니까.』 『경제 GNP만 그렇지 정치 GNP는 1백달러,의식(意識)GNP는 2백달러라는 말도 있다,아들아.』 『사람들이 왜 이리 잘아졌습니까.』 『역사의 종말이 왔기 때문이라고 F 후쿠야마라는철학자가 말했다.아무래도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다시 격화되고,전쟁과 혁명의 나팔소리가 지구상에 울려퍼져야 한국인들은 정신차릴것같애.』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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