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국대학 왜 경쟁력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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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학은 다양성과 자율성을 먹고 지식을 창출하는 학습 공동체다. 대학의 자율성은 캠퍼스 안팎으로부터 태생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기본 가치다. 중세를 거쳐 근현대 대학사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자율성이 살아 움직였던 시대에는 대학문화의 르네상스가 있었고, 창의적인 인재도 배출되었다. 하지만 대학이 자율성을 잃고 규제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대학도 사회발전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학들은 괄목할 만한 외형적 성장에 비해 국제적인 대학순위에서는 상당히 뒤져 있는 상황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개혁 차원에서 대학 자율화를 내걸고, 그 내용을 입시 자율화와 운영 자율화, 그리고 국립대학 재정운영의 자율화 등 광범위한 범주를 포괄하고 있다. 입시 자율화는 2012년까지 3단계를 거쳐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넘긴다는 내용이다. 운영 자율화는 지난 4월 발표된 제1단계 운영 자율화 과제에 내용들이 담겨 있고, 최근 제2단계 자율화 과제가 발표됐다. 국립대학에 교비회계 설치를 골자로 하는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이 제정되어 2010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대학 자율화가 선언적 차원을 넘어 실천적 단계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법제화와 폭넓은 공감대 형성, 이해관계의 충돌 조정 등 풀어야 할 여러 단계가 남아 있다. 대학 자율화가 급변하는 대학환경에서 개별 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몇 가지 제언을 하려 한다.

우선 대학 자율화 추진에 있어 정부·대학·대학 협의체 등 관련 기관 간에 진솔한 소통과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대학 자율화는 우리 대학들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직시하고, 그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동안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 자율화 과제를 대학으로부터 추천받아 공청회를 거쳐 최종 과제를 발표하는 소통의 과정은 옳은 방향이다. 앞으로도 신뢰 구축을 위해 더욱 강조되고 공유되어야 할 절차라고 본다.

둘째로 대학 자율화는 범정부 차원의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머리로 먹고사는 지식기반사회의 경쟁력을 이끌어 갈 대학의 기본 틀을 대학 자율화에서 도출해 낸다는 각오로 과감하고 일관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학 자율화는 범정부적인 협력 스펙트럼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대학 및 정부 관계자들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셋째, 대학 자율화의 우선점은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인적·물적·제도적인 인프라를 글로벌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 내부보다 밖으로 시야를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발표된 자율화 과제 가운데 이행 시기와 단계에 있어서 국제경쟁력지수와 관련된 과제들이 최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외국 대학들과의 겸임교수제, 공동 교육 프로그램 운영, 공동·복수 학위제, 공동 캠퍼스 운영 등 전향적인 과제들이 대학 자율화의 조기 단계에서 법제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끝으로 대학 자율화가 확대될수록 대학의 사회적 책무도 동시에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자율화와 사회적 책무는 수레바퀴처럼 균형을 이루며 선순환되어야 한다. 대학 자율화 추진과 함께 대학도 사회적 책무를 담보할 수 있도록 대학 스스로의 지도성과 감독 내지 모니터링을 제도적으로 보강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대학 자율화가 본격화 되었던 1970년대에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을 높이기 위하여 대학 내 엄격한 자기규제 제도가 시행되었다. 규제를 자율로 바꿔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책무성의 지렛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실질적인 대학 자율화가 한계에 부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 자율화는 한국 고등교육의 수월성을 높이기 위하여 풀어야 할 오랜 과제였다. 그 원칙과 기준을 과거가 아닌 미래 기준에 두고 높은 안목과 개혁의지로 정부 부처, 대학, 그리고 관련 당사자 사이에 소통과 융합의 지혜를 모으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김준영 성균관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