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하벨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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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몇해전 유럽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는 유럽 정치지도자들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 바츨라프 하벨 체코대통령 두사람을 꼽았다.미테랑은 학자적 면모의 철인(哲人)정치가,하벨은 도덕정치의 대명사라는 점이 선정 (選定)이유였다. 극작가이자 시인인 하벨은 지난 77년 반체제단체 77헌장(憲章)그룹을 창설했다.하벨은 77그룹에서 활동한 대가로 79년 투옥,4년반동안 옥고(獄苦)를 치렀다.89년 동유럽에 민주혁명의 폭풍이 몰아쳤을 때 하벨은 반정부운동을 주도했 다.당국은 하벨을 체포했으나 그 때문에 반정부시위가 더욱 거세지자 곧 석방했다.석방된 하벨은 시민포럼을 결성하고 민주화운동을 전개,12월 드디어 공산정권이 붕괴했다.이것이 「벨벳혁명」이다.
그후 하벨은 비(非)공산 연립정권 임시대통령으로 선출됐으며 90년 7월 선거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연방대통령으로 선출됐다.92년 7월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됐을 때 하벨은 대통령직을 사임했으나 93년 1월 다시 체코 대통령에 선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벨 리더십의 요체(要諦)는 진실이다.그의 정치는 거짓말하지않는 정치,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다음세대를 위해 봉사하는 정치다.이를 위해 정치는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92년 대통령직을 떠났을 때 하벨은 정치고백록(告 白錄) 『여름명상(瞑想)』을 펴냈다.이 책에서 그는 『일상적으로 부닥치는 정치의 온갖 추잡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치의 본질은 결코 추하지 않다고 확신한다.나는 정치와 도덕,이 도저히 결합할 수 없을 것 같은 두가지를 결합시키려는 몽상가(夢想家)다』고 썼다.
몽상가 하벨이 자선사업을 위해 전재산을 헌납한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다.대통령이면서도 평소 서민적이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많은 자선활동을 해온 그였지만 전재산 헌납소식은 놀랍다.지난 1월 부인 올가여사의 타계가 결심을 굳힌 계기 가 됐다고 한다.퇴임후 생계를 묻는 질문에 전직(前職)인 작가로 돌아가 글을 써서 살면 되지 않느냐고 답했다 한다.
전직 대통령 비자금사건,청와대 측근인사 축재 비리,국회의원 후보공천때 금품거래 소문 등 온갖 추잡함으로 얼룩진 우리 정치현실을 생각하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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