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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수 이명박, 만수 정주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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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몇 해 전 ‘노무현이 박정희를 이길 수 없는 이유’(본지 2005년 1월 28일자 ‘중앙시평’)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칼럼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이 민감하다 못해 거세고 거친 덕분에 신문칼럼이 그날 밤 텔레비전 9시 뉴스데스크에 등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현 대통령의 전화였다. 만나자는 얘기였다.

#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단둘이 만난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중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얽힌 일화가 있었다. 내용인즉 이렇다. 정 회장은 배운 게 많지는 않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푸는 수가 무궁무진했다. 그래서 ‘만수(萬數)’라 불렸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수가 만수인 정 회장 밑에서 이 사장이 살아남는 것을 보면 그도 수가 구천(九千)은 되는가 보다”라고 말했다. 그때 이 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되받았다. “만수 밑에서는 구천수 아니라 구천구백구십구수도 살아남기 어렵다. 내가 만수인 정 회장 밑에서 용케 버틴 것은 오히려 단수(單數)였기 때문이다.”

# 생전에 정 회장은 직면한 사태 앞에서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판단해 방향을 잡고 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탁월했다. 그 다음 결행은 이 사장의 몫이었다. 그 역시 결행력은 탁월했다. 세월이 흘러 만수 정주영은 가고 단수 이명박만 남았다. 물론 그가 서울시장일 때 단수 기질은 특장점으로 작용했다.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청계천 사업을 성사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 하지만 대통령이 되자 그의 단수 기질은 되레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이 국민의 골을 지른 경우가 적잖았다. 거의 사그라져 가던 촛불을 다시 불붙이고 서울 한복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데 이 대통령의 단수 기질이 한몫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만약 만수인 정 회장이 오늘 살아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마도 그 특유의 억양으로 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해봤어?” 청와대로 가겠다고 밤마다 광화문에서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앞에 직접 가서 계란 맞고 돌 맞을 각오하고 만나봤느냐고 되물었을 것이다.

# 정주영의 컨테이너는 터진 둑을 막았지만 이명박의 컨테이너는 ‘명박 산성’으로 희화화되며 국민과의 소통 단절의 단적인 상징이 되고 말았다.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도를 넘은 시위대는 분명 문제다. 하지만 밤마다 서울 한복판이 무법천지가 돼버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불쌍한 경찰력에만 의존해 청와대로 가는 길목만 막고 있는 것도 결코 능사가 아니다. 지금이 경무대 쳐들어오는 학생과 시민들이 무서워서 막던 1960년 4·19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5공식 방법으로 거리를 싹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은 더 미친 짓이다.

# 결국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이 밤마다 무정부 상태가 돼버리는 작금의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거의 유일한 해법은 대통령이 계란 맞고 돌 맞을 각오를 하고 시위대 앞으로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다. 단수인 이 대통령은 할 수 있다. 그런 대통령에게 국민은 결코 돌 던지지 않는다. 만약 그 상황에서 대통령을 직접 위해하는 이들이 있다면 더 많은 국민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앞으로의 4년 넘는 임기를 제대로 위엄과 영이 서게 가져갈 수 있다.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만 바라보고 아침이슬만 흥얼거려선 안 된다. 오히려 청와대 문을 열고 광화문으로 직접 나가라. 국민을 이기려 하지 말라. 국민 이길 대통령은 없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 동상 보면 떠오르는 한마디가 있지 않는가.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것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