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상업성 모두 놓친 한국영화 "런어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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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신정연휴에 개봉한 유일한 한국영화 『런어웨이』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연휴 나흘간 서울에서 3만명 남짓한 관객동원에 그쳐 지난해 12월 개봉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돈을 갖고 튀어라』『리허설』등 다른 한국영화들의 성적에 크게 못미칠 전망인데다 작품성면에서도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을 얻고 있다 .한국 최초의 액션 스릴러를 표방해 제작단계에서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던 『런어웨이』는 특히 김성수(35)라는 재능있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이어서 관심이 집중됐었다.이는 그가 94년 일본 고베영화제에서 본선에 진출했던 단편영화 『비명도시 』로 충무로 영화인들의많은 기대를 받은 신예이기 때문.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대부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어서 안타깝다.
이병헌.김은정 두 신세대스타를 내세운 『런어웨이』는 『비명도시』를 토대로 만든 장편영화로 우연히 골목길의 살인사건을 목격한 주인공 남자가 살인자와 쫓고 쫓기는 이야기.
우리에게 낯익은 산동네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벌어지는 추격전은어두운 화면, 사람 하나 없는 삭막한 골목길등이 현대도시의 비정함과 무관심을 섬뜩하게 전달해 준다.
『런어웨이』 역시 우연히 살인현장을 보게 된 이기적인 젊은 남녀가 거대한 마약밀매조직에 쫓기게 되면서 진실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게 기본 줄거리.
그러나 『비명도시』에서 보여주었던 문제의식은 간데없고 폭력을위한 폭력으로 비쳐지는 장면들이 많다.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극한상황에서 두 남녀가 서로를 보듬으며 절실한 사랑을 나누는 수중섹스장면등 진지해야할 상황에서마저 관객들 이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런어웨이』는 또『비명도시』에서 보여주었던 감독의 독창성이 많이 옅어진 느낌이다.많은 영화팬들이 『런어웨이』를 보면서 떠오른 외국영화들을 언급한다.이경영이 맡은 형사역은 『레옹』의 게리 올드먼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며,손발이 묶인 남녀주인공에게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하는 창고장면은 퀀틴 타란티노 감독의『저수지의 개들』의 상황설정과 흡사하다.손이 잘리고 피가 튀는등의 걸러지지 않은 폭력신은 『펄프 픽션』을 연상시키지만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에 녹아있는 문 제의식까지는 따라잡지 못한 듯하다.그래서 폭력의 정도가 비슷하다 할지라도 훨씬 끔찍하고 잔인한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감독들에게 독창적인 작품을 기대하는 분위기는 성숙해 있지만 『런어웨이』는 작품성보다 상업적인 흥행에 더 치우친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그 상업성마저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 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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