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50> 굿바이 동대문, 굿럭 효창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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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웰컴 투 풋볼이 50회를 맞았다. 1년이 넘게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지난해 5월 15일자로 나간 웰컴 투 풋볼 1회를 기억하는 분이 계실까. 제목은 ‘마라도 축구장, 동대문운동장’이었다. 대한민국 국토 최남단 마라도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축구장을 보면서 곧 사라질 동대문운동장을 추억하는 내용이었다.

그 칼럼이 나간 지 꼭 1년 뒤인 5월 14일 ‘굿바이 동대문운동장’ 행사가 열렸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명보 올림픽축구대표팀 코치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축구화를 신고 동대문운동장에서 마지막 슈팅을 날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철거작업을 알리는 의식이 시작됐다. 거대한 기중기가 관람석 전광판에 달려 있던 대형 시계를 끌어내리는 장면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동대문운동장은 83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성화대와 조명탑을 유품으로 남기고 한 달 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1회 칼럼의 마지막 단락은 이랬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한 줄 모르던 것들이 막상 없어지면 허전해진다. (중략) ‘동대문운동장’은 지하철역 이름으로만 남게 되는가’.

웰컴 투 풋볼 6회 ‘백범은 축구를 싫어할까’에서는 효창운동장을 다뤘다. 백범(白凡) 김구 선생이 잠들어 있는 서울시 용산구 효창공원과 그 앞에 버티고 있는 효창운동장의 악연을 풀 때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효창원’은 백범이 해방 후 윤봉길·이봉창 등 애국선열 여섯 분의 유해를 모셨고, 자신도 1949년에 묻힌 곳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이 60년 아시안컵 축구대회를 유치하면서 그곳에 효창운동장을 세웠다. 이후 ‘민족 정기’와 ‘한국 축구의 역사’는 40년이 넘는 세월을 기묘하게 동거해 왔다.

2005년 국가보훈처는 ‘효창공원 독립공원화 조성사업’을 내놨다. 효창운동장 스탠드를 없애고 인조잔디 축구장 1면과 추모의 벽 등을 만든다는 게 골자였다.

그러자 백범 관련 시민단체에서 “반공투사 기념탑, 축구장 등 이질적인 구조물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초·중학교 축구대회가 열리는 이곳을 없애려면 대체 부지를 내놔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웰컴투풋볼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씩씩하게 축구도 하고, 순국선열도 참배하는 다목적 교육공간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동대문운동장의 ‘장렬한 희생’ 덕분에 효창운동장은 살아남게 됐다. 최근 서울시는 효창운동장을 리모델링해 초·중·고 선수들이 경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결정했다. ‘효창공원 독립공원화 사업’이 취소됐기 때문이었다. 축구협회는 아예 스탠드를 밀어내고 잔디구장 2면을 조성해 학원축구 전용구장으로 만들어 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하고 있다. 추가 경비를 부담할 용의도 있다고 했다.

동대문운동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개발’의 완력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추억’의 슬픈 뒷모습을 본다. 효창운동장은 용케 살아남았다. 우리는 백범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가호 아래 밝게 커나갈 ‘미래의 박지성’을 본다.

정영재 기자·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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