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줄줄 새는 예산 … 공무원 실명제로 고쳐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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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정광모 지음, 시대의창, 328쪽, 1만3500원

장관을 포함한 교육부 간부들이 자신들의 모교나 그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돈을 지원했다 물의를 빚었다. 특별교부금이란 명목의 이 돈은 국민들의 혈세로 만들어진 돈이다. 학교별로 수백 만원에서 수천 만원씩 뿌린 이 돈을 전부 모으면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특별교부금은 교육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주는 특별교부금도 9400억원이나 된다. 신정아 사건으로 구속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개인 사찰에 지원한 10억원도 특별교부금에서 나온 돈이다. 특별한 목적이 없는 예산이다 보니 제대로 된 평가나 감사가 뒤따르지 않는다. 한마디로 ‘눈먼 돈’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예산을 해부한 최초의 대중서적이다. 그 동안 예산을 다룬 정부나 연구자의 전문서적은 많이 나왔다. 하지만 내용이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긴 어려웠다. 저자는 256조원이 넘는 우리나라 예산을 14가지 주제로 나눠 문제점을 짚어냈다. 적자가 쌓이는 지방공항, 영어마을, 지방축제, 국제 대회 유치 등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예산 배정과 집행 과정의 부실함을 비판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특별교부금 얘기도 나온다. 저자는 교부금을 ‘힘있는 자들의 비상금’이라 표현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정부와 국회, 지자체가 사이 좋게 나눠 쓰는 돈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인 저자는 예산이 배정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자세히 지켜봤다. 이런 경험 때문에 국회가 왜 예산을 깎기 힘든 이유에 대해서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국회 예산 계수조정위원이 되는 순간 의원과 보좌관은 사무실에 앉아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이들은 나라를 위해 세금을 효율적으로 써달라고 찾아오진 않는다. 이들이 요청하는 내용은 ‘나’(부처·지역·단체)와 관련된 예산이다.”

저자는 예산을 올바르게 쓰기 위한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예산을 낭비한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예산사업을 추진한 공무원들의 실명을 공개하는 ‘예산 실명제’는 정책 입안자들이 참고할 만한 시스템이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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