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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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그러나 상운의 표정은 재미있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오히려 한 편으로 싸늘한 표정이 느껴졌다.채영은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의 그런 표정은 권태를 느낄 때 짓곤 하는 것이었다.시험을 끝냈을 때 그는 그러한 차가운 표정을 짓곤 했었■ .어쩌면 그는 민우를 시험에 빠뜨리고 끝내는 길을 발견했는 지도 모른다.
채영은 신나게 말을 계속하려는 민우에게 서둘러 질문을 했다.이런 식의 이야기는 진부하다.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만주 땅의 시나리오 작가예요?』 『이북 사람들은 마누라만큼은 확실하게 잡고 산다고 하더군요.농경을 주로하는 이남 사람들에게서 가정을 키우는 부인들의 파워가 세다면 수렵을 주로 하는 이북 사람들은 용맹한 남자들의 파워가 세겠지요…그 이북 중에서도 최이북인 만주땅 의 시나리오 작가가 쓴 작품이라면 그 영화 속에는 남성성이 한껏 돋보일 겁니다.나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남자들이 좀더 자신의 성숙성에 관심을 갖고 부인으로부터 독립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하긴 제가 봐도 이 나라 남자들의 남자답지 못한 것은 참 심각한 것같아요.겉으로는 남녀불평등이니 해서 남자들이 우세한 것 같지만속을 들여다 보면 한결같이 부인에게 잡혀 있고 눈치만 보고 있지요.특히 경제적 여건이 괜찮은 중산 층일수록 더욱 그런 것 같아요.나는 남편이 돈 적게 벌어온다고 노골적으로 구박하는 나라는 처음 봤어요.미국같으면 당장 이혼감이죠.그런 구박만큼 남편을 모욕하고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것도 없을 테니까요.그런 상황에서도 남자들이 자기 목 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걸 보면 이 나라의 여남불평등은 참 심각해요.』 『그럼 미국에서는 그럴 때여자들이 어떻게 해요?』 민우가 궁금해 물었다.이런 얘기는 처음이다.남편 돈 못벌어온다고 구박하는 부인은 당장 이혼감이라….또 여남불평등이라….
『남편이 돈 벌어다주면 고맙게 받고 그 이상 필요하면 자기가나가서 벌죠.남자가 자기능력껏 벌어왔는데 고것밖에 못벌어왔냐고타박하면 남편보고 도둑질하라는 거예요,뭐예요.』 『하지만 이 나라는 여자들이 마땅히 할 일이 없지 않소.주부들은 보험판매원이나 파출부밖에는 할 일이 없다고들 투덜대던데….』 『바로 그거예요.사회에서 여자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 주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여자들은 남편을 정복해 뒤에서 조종할 수밖에 없는 거죠.대졸 여성 중에 키 160㎝이상,몸무게 50㎏이하의 단정한 외모만이 취직을 할 수 있고 24세만 넘으면 스스로 취직이 불가능한 나이로 주눅들어야 한다면 이 나라는 도대체 여자들을 뭘로 보겠다는 것이에요?』 채영은 자기도 모르게 흥분했다.아무튼이 문제는 얘기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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