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병탄조약 韓.日역사인식의 격차-일본의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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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은 한국의 어깨너머로 대북한 교섭을 하는 등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식민통치는 남북분단의 원인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이례적인 강경 발언이 잇따르자 일본정부는 매우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본측은 문제를 도발한 원인제공자라는 사실을 잊은듯 김대통령이 정말로 한-일관계를 냉각시키려고 작정했는지,아니면 국내용 발언인지 살피는 중이다.현재의 냉기류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궁금해하고 있다.일본측은 다음달 16일 시작되는 오사카(大阪)아-태 경제협력체(APEC)회의를 계기로 무언가 양국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관료 사이에서는 김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노요헤이(河野洋平)외상은 17일 각료회의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은남북분단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고 김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했다.16일에는 외무성의 하야시 사다유키(林 貞行)사무차관이『우리는 대북한 쌀교섭 당시 한국과 긴밀히 협의했다』고 불만을표시했다.
한편으로 일본측이 신경을 쓰는 쪽은 북한의 반응이다.특히 지난 9일 북한이 총리 발언을 비판하면서 무라야마 총리의 이름을이례적으로 거명한 데 대해 당황해하고 있다.수교교섭을 상정한 북한의 고지선점 전략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합방조약은 적법』이라는 망언에 대해 우리측은 이번에야말로 뿌리를 뽑겠다는 분위기지만 일본은 전혀 다르다.문제를 더이상 확대시키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넘어가자는 태도다.
『한국의 과거사 관련 망언규탄 캠페인은 보름정도만 지나면 끝난다는 것을 일본정부는 잘 알고 있다』고 한 일본기자는 뼈아프게 지적했다.
일본정부는 파문을 빨리 가라앉히기 위해 한일병탄에 대한 정부차원의 「통일견해」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합방유효」 주장을공연히 되풀이해 한국의 국민감정에 기름을 끼얹을 필요가 없다는판단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병탄조약의 적법성 여부와 독도 영유권 문제등 두가지 현안만큼은 양국이 각자 자기 주장을 되풀이하는 현상태가 그나마 최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대북한 배상문제나 북방영토 반환문제 등 다른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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