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교과서에 나오는‘내재적 발전론’의 뿌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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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23면

『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2』는 고교생들에겐 익숙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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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국사 교과서 그대로잖아?”

이 책의 키워드인 ‘이앙법·광작(廣作)·경영형 부농’은 마치 ‘정답 3종 세트’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습니다. 김용섭(77) 전 연세대 교수가 1960년대에 발표한 연구 논문을 모아 만든 이 책은 조선 후기에 근대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고 사회 내부에서 근대로 발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자본주의 맹아론’ ‘내재적 발전론’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지금은 내재적 발전론이 국정교과서의 바탕이 될 만큼 정설로 인정받고 있지만, 식민사관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던 그 시절에는 충격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식민사관은 조선을 ‘정체성(停滯性)론’ ‘타율성론’으로 폄훼했지요. 조선은 근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정체돼 있으므로 외부 세력(일본)이 반드시 도와야 한다, 반도 국가인 조선은 스스로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대륙 국가인 중국이나 해양 국가인 일본에 지배받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대해 “조선은 스스로 근대로 옮겨가고 있었다”고 반박한 겁니다.

선생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방대한 양의 조선시대 토지·호적 대장을 분석한 결과로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물증(物證)’을 들이댄 셈입니다.
탈이념·탈민족주의 시대가 오면서 내재적 발전론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라는 비판도 받습니다. 식민사관을 뒤집은 것뿐이다, 서양·마르크스주의 시각에 기대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에 새로운 사관(史觀)과 방법론을 또렷하게 세웠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