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얘기만 왜 쏙 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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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09면

일러스트 강일구

대선과 총선을 잇따라 겪으며 한동안 아는 사람 만나면 ‘저이는 누굴 찍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TV 속 연예인들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닌 사람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비록 막말이지만 상대 후보를 비난하며 여당 만세를 부른 중년배우라든지, 대운하 지지송을 부른 가수, 평소 민노당원이었고 국회의원의 지지연설을 한 젊은 여배우처럼 자신의 입장을 어느 쪽이든 분명히 알려준 연예인들이 속시원했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그런 정치적인 입장 표명도 선거 때만 반짝할 뿐, 평소 TV에서 연예인들은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너무 몸을 사린다. MBC-TV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 강호동은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굴하지 않고 말을 맞받아치고 사생활의 비리나 아픈 과거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캐묻지만, 가수 성시경이 병역기피 문제를 이야기하고 로커 신해철이 전매청을 비난하면 ‘나는 아무 것도 모르니 끼어들지 않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유식하지 않음이 자신이 내세운 이미지일지라도 대중의 눈과 입을 대변하는 미디어의 주체로서의 비중을 감안하면 그런 시사적 이슈에 대해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맞받아칠 만도 한데 말이다.

정치적인 이슈를 금기시하는 ‘무릎팍 도사’에 처음 나온 정치인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 편’은 그래서 완전 맹탕이었다. 다른 연예인 게스트 같았으면 당연히 물었을 법한 질문들, 예를 들어 기자에서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혹은 잇따른 논란을 일으키는 새 정부의 민생정책에 대해서 ‘무릎팍 도사’ 특유의 따져묻기가 이뤄졌더라면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하지만 꼬리를 내린 ‘무릎팍 도사’는 김은혜의 이미 지나간 기자 시절의 인간적인 에피소드만 맴돌았고, 그건 결국 한 정치인의 이미지 홍보에만 도움을 준 결과를 낳았다.

새로 시작한 MBC-TV 시사 토크쇼 ‘명랑 히어로’에서도 그런 아쉬움은 남는다. ‘라디오 스타’에 시사를 결합시킨 이 쇼는 장점이 많다. 박미선·김성주가 ‘라디오 스타’의 막가는 분위기를 중화시키고, 이하늘의 진지하면서도 담백한 이야기는 참신하다.

무엇보다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거실 소파나 야외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이 쇼는 흔한 일상 속 수다판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렇지만 서로의 프라이버시에는 날을 세우던 출연자들은 정치· 사회적인 이슈가 나오면 한목소리로 정답만 말한다. 총선 이야기가 나오면 ‘찍을 사람이 없다’며 정치 무관심을 탓한다든지, 하는 뻔한 결론 같은 것 말이다.

독설과 파격이 전매특허인 김구라에게 거는 기대가 이 쇼의 가장 핵심일 텐데, 그렇다면 그는 우열반 논란에 대해 ‘공부 잘하는 애들이 대접받는 건 당연하다’는 남다른 주장을 하는 것처럼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을 당당히 드러내면서 상대방의 정책을 비꼬는 식의 파격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손쉽게 상대 연예인을 물고 늘어지는 김구라식 막말이 과감히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으로 화살을 돌린다면 그는 진정 새로운 장을 여는 코미디언으로 우뚝 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대통령의 생필품 물가 관리 50개 품목 지정에 대해 “애드리브가 아니었을까”라는 윤종신의 발언에 대해 엄청난 실수라도 한 것처럼 몸 사리는 출연진들을 보니 그런 날 선 비판은 아직 멀어보이기만 하다. 좀 과감하게 정치를 가지고 노닥거리는 오락 프로, 생길 때도 되지 않았나.


이윤정씨는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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