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57>“날 보러 와요”의 함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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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25면

그런 경험이 있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 서야 할 때, 그때 보여줘야 할 게 평소에 잘하는 일이어서 나의 실력을 한번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며 벼르던 기억이.
그러나 막상 멍석이 깔리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의욕이 지나쳐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실력도 다 보여주지 못했던 기억이. 그래서 그 시간이 지났을 때,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을 되뇌며 후회했던 기억이.

또 이런 경험도 있다. 여러 사람이 토론하거나 힘을 모아야 하는 자리. 내가 나서야 할 부분이 아닌데, 모처럼 찾아온 시선을 끌 수 있는 기회여서 중간에 “날 좀 보소” 하고 끼어들었던 기억이. 그런데 그 돌출행동 때문에 전체의 균형이나 조화가 깨져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던 기억이. 그래서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실망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았던, 그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평소에 하던 대로 할 걸” 하고 후회했던 기억이.

위의 두 경우 동기는 다르지만 결과와 그 교훈은 유사하다. 과유불급.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거다. 주위의 시선이나 내 마음속의 긴장은 적당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으나 그게 지나쳤을 때, 또는 시기가 적절치 못했을 때 의도했던 퍼포먼스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프로야구 시즌 초반, 잔뜩 기대를 걸었던 선수들이 부진하다. KIA 최희섭, 두산 김선우 등 메이저리그에서 국내로 돌아온 일부 선수가 그렇고 모처럼의 신인 4번 타자로 꼽혔던 KIA 나지완도 그렇다. 그리고 무대는 일본이지만 올 시즌을 잔뜩 별렀던 이승엽이 그렇다. 이들은 부진의 원인을 묻는 기자들에게 비슷한 대답을 한다. “뭔가 보여주려는 의욕이 앞섰던 것 같다. 그래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게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던 것 같다”고.

초반 돌풍을 일으킬 기세로 질주하던 우리 히어로즈는 최근 그 페이스가 주춤하다. 히어로즈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던 어느 야구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잘 보여서 내년에는 다른 팀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담고 뛰는 것 같다”고.

선수들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타석에서, 등판의 기회에서 뭔가를 잔뜩 보여주려 한다는 거다. 앞서 말했지만 이 부분은 적당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이기적인 플레이, 조화를 깨는 행동이 된다.

히어로즈가 팀의 상징과도 같은 정민태를 퇴출하고, 이번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가 돼 팀을 옮길 것이 확실한 정성훈의 연봉을 듬뿍 올려줬을 때 구단은 선수들에게 그런 태도를 부추겼는지 모른다. 나를 위해 뛴다. 오로지 지금이 중요하고, 내 타석, 내 투구만이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인식을 말이다. 이기적인 선수, 이기적인 플레이는 단체운동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그래서 요즘 프로야구는 “날 보러 와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노래 제목이기도, 연극 제목이기도 한 이 한마디에 “(당신께)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지나친 의욕이나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보지 마세요”라는 배타적 함정이 숨어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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