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이삼촌의꽃따라기] 동강할미꽃, 세상에서 가장 고운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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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해가 안 가요. 그깟 할미꽃 하나 때문에 댐을 못 만든다는 게! 그리고 할미꽃이면 다 같은 할미꽃이지 동강할미꽃은 또 뭐래요?”

달력의 동강할미꽃을 가리키며 저게 동강댐 건설을 막은 주역 중의 하나라고 내가 설명하자 후배가 한 말이다. 웃음이 났다. 그깟 할미꽃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국가 시책을 거두게 되었는지, 또 같은 할미꽃인데 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지 모르겠다니 그 감당 못할 무감각함에 실소가 터진 것이다.

동강할미꽃의 가치는 매우 특별하다. 학명의 종소명이 ‘tongangensis’로서 서식지가 동강임을 나타내는 한국 특산 식물이다. 한국 특산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이 꽃을 보려면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한다는 뜻이다. 그 빼어난 아름다움은 말이 필요 없다. 절벽 틈새에서 동강 물줄기를 굽어보며 피어난 동강할미꽃을 보면 벌어진 입을 약 5분간 다물지 못한다. 진분홍, 청보라, 연보라, 흰색 등등 갖가지 색깔로 피는 모습이 황홀하다. 어떤 절세가인도 동강 할머니 앞에서는 기초 화장부터 다시 해야 한다. 게다가 수장될 뻔한 동강의 수많은 동식물을 지켜낸 의미까지 더해져서 꽃 사진 찍는 이의 발길을 매년 같은 장소로 불러 모은다. 올해도 동강할미꽃 자생지에 들렀더니 여러 모임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나와 있었다. 이곳에서 동강할미꽃의 매력에 반해 동호회에서 자신의 닉네임을 동강할미꽃으로 쓰게 되었다는 분도 계셨다.

할미꽃과 달리 동강할미꽃은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꼿꼿하게 펴고 사는 현대식 할머니다. 할미꽃보다 꽃받침잎의 폭이 좁고 잎이 넓은 점도 다르다. 그런데 그 중간격으로 보이는 것(사진)도 동강 일대의 야트막한 바위 지대에서 발견된다. 언뜻 보면 동강할미꽃은 아니다. 그러나 할미꽃에서만 나타나는 검붉은 색의 꽃 외에 동강할미꽃에서만 볼 수 있는 진분홍색의 꽃이 섞여 피기 때문에 할미꽃이라고 단정 짓기도 뭣하다. 할미꽃에서 동강할미꽃으로의 진화하는 중간 단계에 있는 듯한 종류여서 관심을 끈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사람 손을 타기 십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한 남획으로 인해 문제가 되었는데 최근에 동강 주변 여러 곳에서 자생지가 확인된다는 소식이 전해져 반갑다. 동강할미꽃은 어디까지나 절벽에 핀 모습이 아름답다. 몰래 캐서 화단에 심어봤자 별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동강할미꽃뿐 아니라 할미꽃도 근래에 들어 자취를 많이 감추었다. 할미꽃은 씨로 번식이 잘 된다고 하니 제발 캐어 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할미꽃의 씨를 받을 때에는 열매의 머리카락 같은 털을 잡아당겨 봐서 쉽게 뽑히면 익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직 덜 익은 것이니 조금 기다렸다가 채취해 심으면 된다. 무분별한 탐욕이 씨를 말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 동강할미꽃이 꼿꼿하고 꿋꿋하게 동강의 비경을 지켜주었듯이 동강할미꽃의 미래는 우리가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글·사진 이동혁 (http://blog.naver.com/freebowl)


‘꽃따라기’ 필자 이동혁씨가 『길과 숲에서 만나는 우리나라 나무이야기』를 펴냈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나무들을 37가지 테마로 분류해 생태적 특징과 쓰임새, 나무 이름에 얽힌 유래와 전설 등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기존에 냈던 『하늘보다 높은 나무의 꿈/ 우리나라 나무이야기』의 개정판. 제갈영 공저, 이비락 간, 384쪽,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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