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티베트엔 입다문 유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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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럽의 신문에는 연일 티베트인들을 내리치는 중국 군인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린다. 상당수 유럽 언론은 티베트 사태와 관련해 중국에 대해 비판적이다. 인권 문제를 들어서다. 유럽은 인권 선진국이다. 며칠 전 티베트인이 파리의 중국 대사관 옥상에 올라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끌어내리고 독립 티베트기를 게양하다가 붙들렸다. 그가 파리를 택한 이유는 파리가 인권 선진국 유럽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 본부도 이곳에 있다.

얼마 전 세르비아 땅에 살던 코소보인들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서유럽은 일제히 코소보의 손을 들어줬다. 냉정히 따지면 코소보는 국제법상 명백한 세르비아 땅이다. 독립 문제도 세르비아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런데도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코소보를 위해 압력을 행사하면서 내건 명분은 인권이었다.

그런데 유럽 각국은 티베트 사태와 관련해선 말이 없다. 프랑스의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무장관이 개인적으로 꺼내 든 ‘개막식만 불참’ 카드가 유일하다. 그나마 체면치레용 같다. 코소보 때와 너무나 비교된다.

유럽이 왜 이럴까. 답은 중국의 경제력에 있다. 중국은 지난해 일본에 이어 루이뷔통의 2등 소비국이 됐다. 루이뷔통은 세계 1위 명품그룹인 프랑스의 LVMH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2015년이면 중국은 전 세계 명품의 3분의 1을 책임지는 나라가 된다고 한다. 명품 대국 프랑스가 중국에 대해 티베트 인권 탄압이라고 거세게 비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중국에서 프랑스 명품 불매운동이라도 벌어지면 파리가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수억∼수십억원 하는 고급 승용차인 포르셰(독일)나 페라리(이탈리아)의 중국 수출량도 매년 두 자릿수로 늘고 있다. 이러니 독일이나 이탈리아 역시 중국을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 영국은 최근 중국에 2000억 달러 상당의 펀드를 개설해 달라고 부탁해 놓은 처지다.

티베트 사태에 대한 유럽의 침묵은 이처럼 간단하게 돈의 논리로 설명된다.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일지 모른다. 그래도 명색이 인권 선진국이라는 유럽의 이중잣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