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8일 개막, 더티플레이는 가라 … 이젠 페어플레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겨우내 기다렸던 프로축구가 막을 연다. 스물여섯 해째를 맞은 K-리그는 8일 지난해 챔피언 포항 스틸러스와 축구협회(FA)컵 우승팀 전남 드래곤즈의 개막전으로 시즌을 시작한다. 지난해 각종 사고와 추태로 얼룩졌던 K-리그는 올해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며 깨끗하고 신명 나는 축제판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K-리그, 이제는 페어플레이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팬을 감동시키는 재미있는 축구’를 유도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검사장 출신 곽영철 상벌위원장
축제 재 뿌리는 행위 용납 안해
벌 주는 것만큼 상도 많이 줄것

“축구는 팀끼리는 경쟁이지만 축구팬에게는 신명 나게 즐기는 한판 축제입니다. 축제에 재를 뿌리는 행위는 절대 안 됩니다.”

프로축구판에 검사장 출신 판관이 들어왔다. 곽영철(59·사진) 변호사가 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장에 선임된 것이다.

4일 자신이 공동 대표로 있는 서울 서초동의 법무법인 한승 집무실에서 만난 곽 위원장은 “나는 축구계에 인맥도 없고 이해관계도 없다. 법률 전문가로서 공평무사하게 잘잘못을 가리겠다”고 말했다. 축구 명문 동래고를 졸업한 그는 김호(64) 대전 시티즌 감독이 몇 년 선배인지, 김호곤(57) 대한축구협회 전무가 몇 년 후배인지도 잘 모른다고 했다.

곽 위원장은 “프로축구를 즐겨 봤는데 선수와 지도자들이 심판 판정에 승복을 잘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습관적으로 판정에 항의하면서 경기 흐름이 끊어지고 재미가 반감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는 “프로축구 선수는 공인인 만큼 경기장 밖에서의 행동도 중요하다. 개인 사생활을 들출 필요까지는 없지만 품위에 어긋나는 행위가 드러날 경우에는 엄격히 다스리겠다”고 강조했다.

곽 위원장이 생각하는 페어플레이는 ‘승리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판정에 승복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곽 위원장은 벌을 주는 것만큼 상도 많이 줘 페어플레이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연말에 팀을 대상으로 한 번 상을 주고 그치는 것보다는 상을 줄 일이 있을 땐 선수 개인에게도 수시로 줄 필요가 있다”며 “파울과 경고 횟수, 상대 선수와 팬에 대한 태도 등을 종합해 상·하반기 또는 월별로 시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축구연맹의 상벌 규정을 자세히 읽어 봤다는 곽 위원장은 “일반 법령과 비교하면 연맹 규정이 좀 소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꼼꼼하지 못하다는 표현으로 들렸다. 그는 규정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현실에 맞게끔 바꿀 필요도 있다고 했다. 곽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팀과 선수가 있지만 지금 얘기하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니까 절대 말할 수 없다”며 웃었다.  정영재 기자

1년간 출장 정지…인천 방승환의 반성문
선수들에게 월급 주는 건 팬…
하루 수십번 후회하며 깨달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성하고 후회했습니다. 시즌이 시작돼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또 후회하겠죠.”

방승환(25·인천 유나이티드·사진)을 어렵게 만났다. 그는 ‘축구판을 어지럽힌 주범’이라는 낙인을 안고 5개월 동안 사람을 피하고 있었다. 방승환은 지난해 10월 3일 축구협회(FA)컵 준결승 전남 드래곤즈와 경기 도중 판정에 항의해 웃통을 벗고 주심을 향해 달려들었고, 퇴장 판정을 받고도 10여 분간 경기장에서 난동을 부렸다. 그는 10월 17일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회에서 ‘향후 1년간 모든 국내 경기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지난 주말 인천시 구월동 커피숍에서 만난 방승환은 “이제는 마음을 좀 추슬렀다. 하지만 지난 5개월은 너무 힘들었다”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내가 왜 축구를 했나’하는 후회를 했고, 마음이 좀 정리되자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는 회한이 밀려들었다고 한다.

방승환은 징계가 확정된 뒤 팀을 떠나 부상 치료(허리·어깨·발등)에 전념했다. 지난 연말 팀에 합류했지만 괌 전지훈련 멤버에서 막판에 빠졌다. 2군 선수들과 함께 전남 순천에서 체력 훈련만 했다.

당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어봤다. 그는 “너무 흥분해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 얼마나 철없는 짓이었는지 나중에야 알았다”고 했다. 그 전 2경기에서 자기 팀이 판정에 억울하게 당했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는 데다 주심에게 항의하자 ‘그럼 네가 심판해’라고 말하는 바람에 이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수원 삼성에서 뛰다 축구를 그만둔 친구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아느냐”고 말할 때 방승환은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방승환은 페어플레이에 대해 ‘격렬하게 경기하되 고의적인 파울을 하지 않고 시간을 끌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시즌을 시작하는 동료 선수들에게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으냐고 묻자 “우리에게 월급을 주시는 분이 팬이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승환은 “징계가 풀려 다시 경기장에 나선다면 심판이 어떤 판정을 내리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수비하러 뛰어갈 것”이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인천=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