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들어떻게자라나>2.어린이복지 무관심속에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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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여덟살 보람이는 말을 못한다.「말문이 좀 늦게 트이는 아이」쯤으로 생각하며 세살까지 기다리다 좀처럼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는게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흔치않은 상담기관이며 교육프로그램들을 기웃거리다 종합병원을 찾은 것은 보람이의 다섯 번째 생일무렵.귀에 이상이 있는 것같아 이비인후과로 갔지만 이상이 없었고지능검사를 해봐도 문제가 없었다.
마침내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내린 진단은 자폐증.보람이 부모가가슴을 졸이며 온갖 병원을 헤매고 심지어 용하다는 점쟁이까지 백방으로 찾아다니다 이런 결론(?)을 얻기까지 꼬박 5년이 걸린 셈이다.자폐아란 사회에 대해 스스로 문을 닫 는 행동을 하는 어린이로 신체상 장애가 없으며 정신지체아도 아니므로 장애인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어렵사리 자폐아 교육기관을 찾아내 반년가량 기다린 끝에 소위특수교육을 받고 있는데 매달 드는 비용은 30여만원.사실상 자폐아는 7세이전에 전문적인 조기교육을 받지않는한 치료가 거의 어렵다고 한다.그래도 부모로서 일말의 희망을 버 릴 수 없어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지만 늘상 누군가 원망스럽고 가슴이 답답하다.좀더 일찍 자폐증 진단을 받기만 했더라도….
장애어린이들의 교육기회는 매우 제한돼 있다.대통령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에 따르면 장애아동들 가운데 12.6%만이 교육혜택을 받고 있을 뿐 대다수 장애아들은 교육기회조차 얻지 못하고있다. 장애아들은 원래 장애의 종류나 증상의 정도 등에 따라 전문적인 특수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그러나 맹아학교에서 농아학교로 특수교사들을 순환보직시키는등 전문화에 역행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잘못된 경쟁의 논리는 정상아동보다 한결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하는 장애아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장애아는 일찍 발견해서 특수한 교육과 적절한 재활교육을 익혀 홀로 설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도 없다.
모든 선진국은 이처럼 기본적인 일을 국가와 사회가 맡는다.하지만 우리나라 장애아들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 얼마나 방치돼 있는가. 장애를 예방.치료하며 어린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하려면 우선 의료서비스를 값싸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나라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고 있으나 본인부담률이 과중해서 정작 의료보험 혜택이 가장 절실한 가난한 가정의 어린 이는 병원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건강검진과 예방접종 등 예방서비스에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또 소아과 진료과목이 세분되지 않아 전문적 진료를 받기 어렵다.현재 소아과 전문의는 어린이에 대한 일반의인 셈이어서 소아외과.소아내과.소아피부과처럼 각 진료과별목 전문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
최근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수많은 아이들이 교통사고등 「불의의 사고」로 숨지거나 크게 다치고 있다는 사실이다.성수대교 붕괴사고나 대구 가스폭발사고처럼 수많은 중.고생들이 통학길에 희생되는 경우 말고도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참으로 위험한통학길을 오가고 있다.
연령별 사망원인을 살펴보면 5~14세에서 사망 원인의 45.
5%가 「불의의 사고」.성인을 포함한 전체 사망자의 11.9%가 불의의 사고로 숨진 것과 비교할 때 약 4배나 더 높은 비율이다. 지난해 교통사고 피해 어린이는 사망 8백45명,부상 4만4천여명.교통사고로 숨진 어린이의 37.5%가 집으로부터 반경 1㎞ 이내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은 어린이의 활동반경인가정 주변과 학교까지의 통학로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뒷받 침한다. 따라서 교통사고로 인한 어린이들의 피해를 줄이려면 학교주변통학로를 「학교구역」으로 설정,보도와 차도를 구분하고 자동차의속도를 제한하며 주차를 금지시키는등의 방법으로 어린이들의 「보행권」을 확보해줘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생활환경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데 국가는여전히 가족의 책임,당사자의 운명이라며 방치할 것인가.그렇다면이 나라는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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