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열<LS그룹>·구본상<LIG그룹> '금융 동맹' 맺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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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2004년 계열분리로 LG, LIG, LS, GS로 나뉜 옛 LG그룹이 LG카드 사태로 잃어버렸던 금융 재건에 나섰다. 차세대 성장산업인 금융을 빼놓고는 그룹 전체의 미래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 선봉에는 LS그룹의 최고경영자인 구자열(55) LS전선 부회장과 LIG그룹의 실질적인 오너인 구본상(38) LIG넥스원 사장이 서 있다.

구자열 LS전선 부회장은 자산운용시장에서 세를 불리고 있다. 구 부회장은 옛 LG그룹의 금융계열사였던 LG투자증권에서 7년여 동안 증권영업은 물론 국제업무를 담당한 바 있는 증권전문가. 그는 LG그룹의 계열분리 후 LS그룹을 맡으면서 증권시장을 떠났지만 증권업의 가능성과 성장성을 누구보다 강조한 CEO 중 한 명이었다.

LS전선 등 LS그룹이 지난해 3월 일임·자문회사인 델타투자자문을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구 부회장은 델타투자자문 인수 당시 자비를 털어 직접 참여할 정도로 증권업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현재 그는 델타투자자문의 개인 대주주(13.65%)다.

구 부회장은 조만간 델타투자자문을 자본금 100억원의 자산운용사로 전환할 방침이며, 이를 위해 증자 계획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델타투자자문은 총 운용자산 약 1조원, 자본금 40억원의 소형 운용사다.

자산운용업계 한 대표이사는 “자산운용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델타투자자문도 자산운용사 전환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며 “누구보다 증권산업의 성장성을 높이 사고 있는 구자열 부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델타투자자문의 자산운용사 전환이 LS그룹의 자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 관리하는 것은 물론 그룹 내 금융사업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LIG그룹, 증권업 진출 의욕

LG투자증권에서 근무했던 증권사 한 임원은 “증권업에 애정이 컸던 구 부회장이 금융사업을 확대할 것이라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며 “델타투자자문 인수와 자산운용사 전환은 그 시발점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올 들어 LIG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구본상 사장은 증권업 진출에 주력하고 있다. 구본상 사장은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동생인 구철회(75년 작고)씨의 장손으로 LIG그룹의 실질적인 오너다. LIG그룹은 크게 LIG홀딩스와 LIG손해보험 두 축으로 구성돼 있다. 구 사장은 LIG넥스원과 함께 LIG홀딩스의 대표도 맡고 있으며, LIG손해보험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구 사장은 올 들어 LIG손해보험의 주식을 대거 사들이면서 LIG그룹의 3세 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특히 M&A에 적극 나서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로 2006년에는 건설회사인 건영을 인수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구본상 사장은 LIG그룹의 핵심 동력을 금융에서 찾고 있다. 현재 LIG손해보험이 추진하고 있는 증권사 설립도 모두 구 사장의 아이디어라는 후문이다. LIG손해보험은 이달 중 금융감독원에 증권사 설립 예비허가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LIG그룹의 가장 핵심 사업부문은 LIG손해보험 등 금융 부문”이라며 “따라서 금융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LIG 성장 전략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LIG그룹의 증권사 설립에 LS그룹이 공동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공동으로 증권사를 설립할 경우 초기 금융시장 진출에 따른 자금부담 등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증권사 설립을 위한 최소 자본금은 종합증권사 500억원, 단종증권사(인수업무 및 파생상품 업무 제한) 300억원이다.

LIG그룹의 증권사 설립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LIG손해보험의 증권사 설립에는 LS전선 등 LS그룹도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안다”며 “각각 5 대 5의 자본금을 출자해 종합증권사를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보험사를 가지고 있는 LIG그룹과 자산운용사를 보유하고 있는 LS그룹이 손을 잡게 되면 그룹 간 연계업무 등 금융부문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계열분리가 됐긴 해도 같은 범주(LG그룹, 구씨 집안)에 있기 때문에 유사한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공동으로 금융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이 그룹 전체에도 이익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LG그룹의 핵분열(계열분리) 당시 그룹 간 암묵적으로 맺었던 ‘각자 영역 존중’ 협약도 LS와 LIG의 증권사 공동 설립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협약에 따라 LG-LS-LIG-GS그룹은 각자 사업영역을 존중하고 최대한 침범하지 않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증권업 진출을 똑같이 모색하고 있는 구자열 부회장과 구본상 사장이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옛 LG그룹에 몸담았던 한 임원은 “계열분리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룹 간 협약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더욱이 LS와 LIG는 형제 관계이기 때문에 증권사를 설립한다면 공동으로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6년 구본상 사장이 건설회사 건영을 인수하면서 이 협약이 깨진 것 아니냐는 소문도 나돌았다. GS그룹의 GS건설과 겹치기 때문. 이와 관련해 김갑렬 GS건설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범LG그룹의 건설업 진출을 위한 신호탄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번 인수는 건설회사 경영을 위한 것이 아닌 단순한 재무적 투자로 봐야 한다”고 해명하기까지 했다.

LS-LIG그룹 시너지 효과 높여

증권사 공동 설립과 관련해 LIG손해보험 측은 “합작투자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LS그룹과의 연관성은 밝히지 않았다. LIG손해보험 전략기획팀 관계자는 “합작 투자, 전략적 투자, 단독 투자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에 있다”며 “현재는 단독투자로 방향을 정했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증권사 설립 규모와 관련해서도 “종합증권사와 단종증권사 중 어느 것이 효율적인지 검토 중”이라며 “최대한 이달 중 예비허가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단독이건 공동이건 증권사 설립이 완료되면 LG가(家)는 은행을 제외한 보험·증권·자산운용사를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의 뼈대를 갖추게 된다. LG카드채 사건 이후 4년여 만에 금융 재건의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다. 2004년 당시 LG그룹은 LG카드의 부실 처리 문제 등에 따라 증권업을 포함한 금융업을 사실상 접을 수밖에 없었다.

증권사 한 대표는 “LG카드채 사건 이전만 하더라도 LG는 증권 및 카드시장에서 업계 리딩 컴퍼니(LG투자증권, LG카드)를 거느린 그룹이었다”며 “막대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LG家가 손잡고 다시 자본시장에 뛰어든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고, 충분히 승산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임상연 기자 sy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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