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밀입북 有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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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안호상(安浩相)박사의 밀입북소란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끈기있게 감내하면서 대북관계를 정상화해 보려는 정부시책에 혼선을 빚게했고,우리사회의 원로라는 위치에서 분명히 실정법을 위반하는 愚를 범했다.
평화적인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교류의 폭은 계속 넓혀가되협상전략에 차질이 없도록 한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국민의 도리요,또 이것이 국가이성(國家理性)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통일에로의 순리를 모를리 없는 安박사가 왜 밀입북을 결행했을까.판문점을 넘어오면서 『생전에 단군묘를 참배하고 싶었다』라고 소탈하게 말했다지만 내생각으로는 安박사 나름의 뜻이 있었으리라 본다.우리의 북쪽이 최근 단군 묘를 거창하게 건립.치장해 단군이래 배달민족의 본거지가 평양이라는 것을 과장선전하고 있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체제붕괴의 위협을 느끼는 북한이 단군숭배를 통해 배달민족 정치의 정통성이 북에 있다는 것을 위장하려는 북의 저의도 잘 알것이다.그런데도 그가 북에 간 것은 타의에 의해 분단돼 있는 배달의 후손들이 모두 국조(國祖)인 단군숭배를 통해 통일민족이라는 공통분모를 새삼 재인식 하는 것이 통일에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때문일 것이다.그에게는 어느 쪽이 민족정통성의 맥을 잇고 있느냐의 다툼보다는 역사의 긴 눈으로 볼 때 「배달의 민족정신을 제대로 자각하기만 하면」(베 를린大 초대총장인 피히테的시각)이것이 바로 분단극복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국철학계의 원료학자요 초대 문교장관인 安박사는 그 인생역정이 방북이전까지만 해도 애국의 念으로 줄곧 이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일제학정이 분해 『비행기를 만들어 타고 이들을 모두 없애겠다』며 일본유학을 떠났고,상해시절엔 중국인 친구로부터 『나라없는 놈』이라는 욕을 듣고는 그 친구와 대판 싸움을 벌였다. 해방조국의 정신적 단합을 위해서는 일민주의(一民主義)를 내놓았던 분이기도 하다.
이번의 방북(訪北)소란이 이같은 그의 인생역정에 큰 흠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국제교과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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