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의 Winning Golf <42> 허둥지둥 클럽하우스에 오는 골퍼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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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26면

“제 플레이에 집중했어요.”

대회 우승자를 인터뷰할 때 가장 자주 듣는 얘기다. 수능시험 만점자에게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듣는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라는 대답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 대답은 기자를 아주 곤혹스럽게 한다. 좀 더 극적인 기사를 써 감동을 주고 싶은 기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맥 빠지는 식상한 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답은 정말 다양한 의미와 상황을 함축하고 있다. 골프에는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요소가 너무 많지 않은가.

컨디션이 나쁘다고 치자. 몸살 기운이 있거나, 알레르기 때문에 맑은 콧물이 뚝뚝 떨어지거나, 허리 디스크로 인한 통증이 유난히 심해지는 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겠는가. 주말 골퍼의 경우 전날 폭음했다거나, 잠을 설쳤다거나 골프가 안 되는 원인은 숱하게 많다. 치질이 있는 골퍼들의 경우 오래 걷다 보면 통증을 느끼게 되지만 내놓고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잔병’을 갖고 있는 골퍼가 적지 않다.

투어프로들이 정규 시즌이 끝나면 겨울훈련을 떠나기 전 반드시 병원을 찾아 몸의 이곳저곳을 점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프로들이 빈번하게 찾는 곳은 치과다.

임팩트 때 목과 턱관절에 엄청난 파워가 집중되기 때문에 치아 손상이 잦다. 주말 골퍼들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본격적인 시즌에 앞서 자신만의 잔병을 말끔히 치료하는 것은 골프의 집중력을 높이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라운드 상황으로 들어가면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다. 투어프로들은 걷는 보폭과 리듬까지 생각한다. 그 리듬이 스윙 템포에 영향을 미치거나 흐름을 깨트릴 수 있기 때문에 평소 습관이 된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또 ‘고수’를 보면 1번 홀에서 티샷하기 전까지 시간대별 플로차트(Flowchart)가 정말 명확하다. 한 시간 전쯤 도착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것은 기본이다. 이어 느긋하게 식사한 뒤 화장실에 들러 몸을 가볍게 하고 티오프 10분 전쯤에는 퍼팅 그린에서 연습 스트로크까지 모두 끝마친 상태로 여유 있게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선다.

반면 집에서 늦게 출발해 서둘러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는 등 ‘시간의 단추’를 잘못 끼우면 티오프는 물론이고 라운드 내내 뭔가에 쫓기는 듯 허둥지둥하게 된다. 틀림없이 18홀을 어떻게 돌았는지 알 수 없게 되고 골프의 즐거움은 반감된다.

라운드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서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할 수 있다. 당연히 차분하게 라운드를 즐기는 것이 이상적이고 스코어도 좋다. 허겁지겁 골퍼가 있게 되면 동반자가 모두 집단최면에 걸린 듯 구름 속의 골프를 하기 쉽다.

물론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한다는 일은 이 같은 준비 과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골퍼들이 정말로 “제 플레이에 집중했어요”라고 말하는 곳은 코스 안에서다. 마음의 평정. 동반자가 티샷을 500야드나 날리더라도 자신의 240야드짜리 티샷에 만족하고 다음 샷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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