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압승 파키스탄 선거혁명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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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샤라프, 유권자의 천벌을 받다’ ‘무혈혁명’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19일(현지시간) 파키스탄 현지 신문과 방송의 머리기사다. 전날 실시된 총선에서 야당의 압도적 승리로 선거 혁명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지난해 말 야당 지도자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피살된 이후 불어 닥친 민주화 열기가 2개월여 만에 현실화된 것이다. 1999년 쿠데타로 집권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좁아지게 됐다. 실각 가능성도 나온다.

전국 268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연방 하원 선거에서 부토 전 총리가 이끌던 파키스탄 인민당(PPP)은 19일 오후 9시(한국시간) 현재 87개,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이끄는 야당 파키스탄 무슬림 리그-N(PML-N)은 66개 지역구에서 각각 승리했다. 반면 여당인 파키스탄 무슬림 리그-Q(PML-Q)는 38개 의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또 PML-Q의 연정 파트너인 MQM과 PPP-S는 각각 19개, 1개 지역구에서만 당선이 확정됐다.

연정 3개 주요 정당이 확보한 의석(58개)은 두 야당 의석(153석)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다른 대부분 지역에서도 야당이 앞서고 있어 PPP와 PML-N이 원내 제1, 2당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 두 야당은 선거에서 승리하면 연정 구성에 합의한 상태여서 PML-N을 이끌고 있는 샤리프 전 총리가 차기 총리에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부토의 남편으로 PPP를 이끌고 있는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당수는 “총선에 승리하더라도 총리를 맡지 않고 국가 화합과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샤리프 전 총리는 19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민주화를 바라는 모든 국민의 승리다. 그동안 무샤라프 대통령이 취한 모든 탈헌법적 행위는 원상 복귀될 것이다. 그의 집권 2기(2008~2012년)는 불법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며 무샤라프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러나 무샤라프 대통령은 19일 밤 “총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승리한 정당과 협력해 국정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말해 퇴진을 거부했다. 여당인 PML-Q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야당이 될 각오가 돼 있다. 승리한 두 야당에 축하를 보낸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카라치=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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