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政.財界 새로운 관계 정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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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얼마전 어느 경제단체장이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자 우연히도 그 분이 회장인 기업이 곧바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게되었다.또한 정부가 어느 특정 대기업집단에 대해서 호의적이라느니 또는 다른 기업집단은 한번 혼을 내준다는 식 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이러한 보도가 모두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나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아직도 1970년대에 살고있지 않나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한국의 전통적인 정부.기업 관계는 물론 1960~80년대에 이르 는 소위 개발연대(開發年代)에 형성된 것이다.그때는 정부가 국내시장을 수입품과 외국인 투자로부터 보호해 주었고 정책금융과 은행신용 등 자금을 기업에배분하였으며 인허가를 통해서 기업의 신규사업 진출을 결정하였다.이러한 시기에는 물론 기업이 정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았으며 정부.기업 관계는 소위 「한국주식회사」형이었다.다르게 표현한다면 기업은 정부에 종속밀착(從屬密着)되었다.
그동안 한국기업은 많이 성장하였다.그 결과 1970년대 초 이후 적어도 세차례 이상의 정치적 과도기마다 정치집단은 대기업을 사회적 불만의 분출 대상으로,즉 속죄양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민간주도를 외친지도 이제 15년이 지났고 정부 가 직접적 시장개입이나 기업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온지도 오래 되었다.또한 현 대통령은 기업으로부터 돈을 한 푼도 안 받겠다고 선언하여 과거의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었다.이러한 때에 여전히 개발연대의 종속밀착형 정부.기업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고위 관료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현재 우리 기업이 가진 문제는 무엇인가.소유집중과 문어발식 사업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들 한다.그런데 30대 기업집단의 경우 대주주와 가족의 지분은 83년의 17.2%로부터 11년만에(94년)9.7%로 낮아졌고 앞으로 10년이면 2~3%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다.요즘 문제가 되는 30대 기업집단의 상호출자도 83년의 40%에서 94년에 33%로 낮아졌고 앞으로 10년 이내에 정부가 규제하려고 하는 25%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다.왜냐하면 기업이 성장하려면 증자 를 해야 하고 증자를 하면 대주주지분이나 그룹내 상호출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고 대기업들은10년 이내에 전문경영체제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그때는 인재확보경쟁에서 매우 불리해질 것이다.선진국 어느 나라도 기업의 업종선택에 대해서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는 없다.한 국의 기업집단의 가장 큰 문제는 국제경쟁력이 취약하다는데 있다.10대재벌에 속한다는 기업집단도 들여다 보면 업종이나 기업구조,인력구성이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있다.그런데 이러한 취약한 기업을 강하게 하는 방법은 경쟁을 촉진하 는 것 이외에는 묘수가 없다.
이제 한국의 정부.기업 관계도 성숙돼야 하겠다.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성행하는 여건에서 정부가할 일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지,기업의 소유구조나 다각화 전략을 가지고 왈가왈부할일이 아니다.기업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국제경쟁력이 있게끔 경쟁시장에 내던져져야 한다.세계화시대에는 모양이 좋은 기업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경쟁력이 강한기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정부와 기업이 서로 자기 본업에 충실하는 분업협력형(分業協力型)이 이러한 새 시대에 맞는 정부.기업 관계다.법을 어기는 기업은 처벌받아야 하고 비윤리적인 기업은 비난받아야 한다.동시에 기업인들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수있고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기업이 정부에 종속되던 시기는 이제 지나갔다.

<정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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