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기자와도란도란] 지수 전망은 ‘신의 영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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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우리 센터는 박쥐라서요.”
 이솝 우화에 박쥐 얘기가 나온다. 하늘 동물과 땅 동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땅 쪽이 유리하자 박쥐는 날개를 접고 “난 쥐 사촌이에요”라며 땅 편에 붙는다. 그러다 하늘 쪽으로 전세가 역전하자 이번엔 “여기 날개 좀 보소. 내가 어디 땅 동물인가”라며 하늘 진영으로 재빨리 옮겨간다. 요즘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영락없는 박쥐 신세다.

 연초만 해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낸 자료는 장밋빛 일색이었다. 하지만 지난주 초 증시가 급락하자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증권사마다 앞다퉈 지수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기에 바빴다. 아직 전망치를 바꾸지 않은 곳도 시기만 보고 있다. 지수는 바닥인데 진작 발표한 전망치는 턱없이 높으니 그 간극만큼 리서치센터장의 속이 타들어 갔을 법하다. “펀더멘털은 튼튼하지만 단기간에는 글로벌 증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설명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증권가에선 시장에 따라 목소리 크기도 달라진다. 장이 좋을 땐 낙관론자의 목소리가 커진다. 반대로 장이 안 좋으면 비관론자의 말발이 선다. 지난주 있었던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간담회도 그랬다. 센터장별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평소 비관론을 주장하던 센터장의 발언 시간이 가장 길었다는 후문이다.
한 증권사 센터장은 “이런 식의 시황 간담회에 여러 번 참석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증시에 문외한이라도 누가 말을 많이 하느냐를 보면 시장이 어떤지 대번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예 지수 전망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있다.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될 것 같느냐고 물었더니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는 “지수 전망은 신의 영역”이라고 했다. 시장에 관계없이 저평가된 기업을 사들여 제값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가치 투자의 전문가다운 답이다.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지금 시장이 왜 좋고, 왜 나쁜지를 설명하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주가 반등으로 그나마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의 얼굴이 좀 폈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정보파트장은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라고 털어놨다. 한번 크게 데어서 그런지 주가가 반등했다고 섣불리 낙관론을 펴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프랑스에서 터진 희대의 금융사고도 경계심을 더 부풀린다. 하지만 증시 전문가가 앞다퉈 비관론자로 돌아서는 게 증시 바닥을 알리는 신호라는 해석도 있다. 아예 주가보다 증시 전문가의 전망치를 눈여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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