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미술품 1만여 점 일일이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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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22일 경기도 용인시 삼성에버랜드 인근 미술품 수장고(收藏庫)에 대한 압수수색을 끝냈다. 수색 작업은 21일 오후 4시부터 이날 오후 10시까지 진행됐다. 이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측이 비자금으로 샀다고 의혹을 제기한 30점의 유명 미술품이 보관돼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특검팀 관계자는 “‘행복한 눈물’(로이 리히텐슈타인 작)과 ‘베들레헴 병원’(프랭크 스텔라 작)은 발견하지 못했다”며 “그 외에 비자금으로 구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작품들이 있었는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두 작품은 김 변호사가 의혹을 제기한 미술품 중 가장 고가의 작품이다.

 압수수색을 당한 수장고는 네 개의 전시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 소유다. 재단 측은 “김 변호사가 지목한 작품들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삼성 측은 “‘행복한 눈물’이나 ‘베들레헴 병원’을 구입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작품 훼손을 막기 위해 미술품 취급 전문가를 동원해 소장품의 개봉 작업을 진행했다. 미술품 보관 목록과 운반 일지 등 관련 서류를 조사하기 위해 특별 수사관 10여 명을 추가로 투입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미술 작품들을 카메라로 촬영한 뒤 현장에서 철수했다.

 특검팀이 수색한 창고는 삼성에버랜드 근처 맹인안내견 학교 뒤편에 있는 창고 9개 동 중 3개 동이다. 슬레이트 지붕에 벽돌로 지어져 외부에서는 허름한 창고처럼 보인다. 원래 이 자리엔 옛 제일제당이 돼지를 기르던 돈사(豚舍)가 있었다. 1993년 축산 폐수 오염 문제가 불거져 제일제당 측이 이를 재단에 기증했다. 삼성문화재단은 돈사를 허물고 항온·항습·해충 방지 시설과 보안 장치를 단 수장고를 지었다. 재단이 15년 전부터 예술품 수장고로 사용해 미술계에선 ‘삼성의 용인 수장고’로 불린다.

 삼성문화재단(리움·호암미술관·로댕갤러리·삼성어린이박물관)은 1만5000여 점의 소장품 중 전시되고 있는 200여 점 외의 나머지는 이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엔 작고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불교 예술품·골동품·미술품도 상당수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 차명계좌 조사와 관련, 특검팀은 이날 이순동(61)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실장 보좌역(사장)과 이형도(65) 삼성전기 부회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이 사장은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전무와 전략기획실 기획홍보팀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전무, 삼성전기 대표이사를 지냈다. 특검팀은 이들을 상대로 삼성 계열사 임원 명의의 차명계좌가 개설된 경위와 자금의 출처를 조사했다.

김승현·권근영·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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