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면 가장 낮은 곳서 시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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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경 파고다교육그룹 회장(64)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1998년 가을 미국 시애틀 인근에 있는 레이니어 산 정상(해발 4392m) 부근에서의 일이다. 동행했던 산악인 엄홍길씨가 다친 몸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도 영하 30도의 혹한을 뚫고 끈기있게 등반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고서다. 엄씨는 그 전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 정상 부근에서 동료 등반인을 도우려다 추락, 오른쪽 발목이 돌아가고 다리뼈가 세 동강이 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다들 엄씨의 산악인생은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고 회장은 동의하지 않았다. 엄씨도 이를 악물고 재활훈련을 했다. 그런 모습에 감동한 고 회장이 엄씨를 데리고 재기 목적으로 레이니어를 찾았다가 그의 투혼 앞에 눈물을 흘린 것이다. 눈물은 헛되지 않았다. 자신감을 되찾은 엄씨가 이듬해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한 것이다. 다섯 번 도전 끝에 일군 값진 결실. 다섯 차례 모두 동행했던 고 회장도 만세를 불렀다.

그런 고인경 회장을 서울 강남 파고다타워에 있는 집무실에서 최근 만났다. 같은 건물에 있는 파고다 외국어학원엔 층마다 엄씨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엄홍길의 대부’답다. 방은 등산장비와 등정 사진으로 가득차 있엇다. 가장 눈이 가는 게 고 회장과 엄씨가 지난달 28일 남극 최고봉인 빈슨매시프(해발 4897m)에 함께 오른 기념사진이었다. 엄씨가 등정할 때마다 항상 베이스캠프에서 지원 역할을 했던 고 회장이었지만 이때만은 둘이 함께 정상을 밟았다. 고 회장이 입을 열었다.

“엄 대장(고 회장은 엄홍길씨를 항상 이렇게 불렀다)이 산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나와 나누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사무실에 전시된 장비 중 엄씨가 선물한 피켈(등반장비의 하나)을 특히 아낀다고 했다. 엄씨는 고 회장의 지원으로 등반을 다녀올 때마다 자신이 사용한 피켈을 선물한다고 한다.

사실 고 회장도 숙련된 산악인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200여 개의 산에 오른 것은 물론, 여러 차례의 에베레스트 탐험대에 동행했다. 93년엔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남극점을 탐험했다.

어리석은 물음 같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왜 산을 오르는 것일까?

“산 정상에 오르면 밑에선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이 보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보이죠. 최근 세계의 많은 CEO(최고경영자)들이 고산 등반을 하고, 극지방을 탐험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일본 CEO 세계에선 일반화됐더라고요.”

고 회장은 등산에서 내면의 성숙이라는 선물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겸손해져야 한다는 마음도 배우고, 사업의 구상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등반은 기쁨만 주는 게 아니며, 고통이자 희망”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에베레스트 같은 험준한 산에 갈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내가 다시 산에 오나 봐라’라고 생각했다가도, 돌아오자마자 다음에 오를 산을 물색하는 그다.

고인경 회장<右>이 엄홍길씨와 함께 남극 최고봉인 빈슨매시프에 올라 태극기를 펼치고 있는 모습.

사실 고 회장의 인생 자체가 험준한 산을 오르는 여정과 같았다. 그는 이화여전을 나온 할머니로부터 ‘소수정예로 원어민과 공부하는 영어학원’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어 69년 종로에서 학원사업에 뛰어들었다. ‘학문을 팔아먹는 것’이라는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맨손으로 시작한 파고다영어학원은 현재 한 달 등록 학생이 5만여 명이 넘는 ‘학원계의 삼성’이 됐다. 기독교계 잡지인 가이드포스트를 60년대부터 계속 펴내고 있기도 하다.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체력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운전기사가 ‘4시인데 퇴근 안 하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누가 4시에 퇴근을 하냐고 핀잔을 줬더니, 새벽 4시라고 합디다.”

고 회장이 껄껄 웃었다. 그러다 결국 46세 되던 해 과로로 쓰러졌고, 의사로부터 한 번만 더 쓰러지면 반신불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등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양정고 등산부 출신이었기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커피와 성경책만 들고 전국 산을 돌아다녔습니다. 체력을 기르는 것은 물론 나 혼자 오롯이 있으면서 사업 구상도 다잡을 수 있었고, 제 자신도 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지요.”

그런 산행으로 다져진 체력과 정신력이 때문일까. 올해 64세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단단해 보였다.

고 회장이 산을 오르는 이유는 또 있다. 산에 오르면 학원폭력으로 잃어버린 아들과 만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렸을 때 라디에이터에 머리를 부딪혀 성장 부진을 보였는데, 청소년기에 불량배들에게 시달림을 받다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참 순진한 아이였는데…” 그의 굵은 목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히말라야 등정 길에 ‘램’이라는 이름의 현지 소년을 만나 양아들로 삼았다.

“그날 밤 아들이 꿈에 나왔어요. 웃는 얼굴로 얼마나 편해 보이던지…”

램은 네팔의 고산족인 셰르파(Sherpa)족의 소년이다. 셰르파족은 히말라야 등반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짐 운반부터 길 안내까지 도맡는다. 그러다 보니 사고도 자주 당하고 희생도 많다고 한다. 고 회장은 오랜 기간 셰르파족을 후원해 왔고, 올해는 엄홍길씨와 함께 ‘엄홍길 휴먼 재단’을 만들어 보다 조직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산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엄홍길씨와의 우정이다. 95년 지인의 소개로 ‘탱크’라는 별명의 엄씨를 만나 끈끈한 인연이 시작됐다. 엄씨가 난생 처음 받아본 월급도 고 회장이 지원해준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고 회장이 등반인으로는 엄씨의 그늘에 가려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 회장의 생각은 다르다.

“성공이란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죠. 엄 대장은 8000m 정상 정복을 목표로 세워 이뤄낸 것이고, 나는 5000m급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걸 목표로 잡고 이를 달성한 겁니다. 우리 둘 다 성공한 거죠.”

나이답지 않게 회색 정장에 분홍색 타이와 포켓스퀘어(윗주머니 손수건)을 매치할 만큼 멋쟁이다. 그러나 양복보다는 등산복과 아이젠이 더 편하다고 한다. 집무실에서도 늘 엄씨와 함께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을 보며 일한다.

“행동하는 사람에겐 말이 없습니다. 행동에 답이 있기 때문이지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가 고산에 오를 때마다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어둔 ‘산상교훈’이다.

글=전수진, 사진=김성룡 기자

◆고인경 파고다교육그룹회장=1969년 부인 박경실씨와 함께 시작한 파고다학원을 현재 월평균 수강생 5만 명의 파고다교육그룹으로 키워냈다. 65년부터 발행된 기독교 잡지 가이드포스트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양정고 등산부에서 산을 타기 시작, 현재 한국에서 고산 등반과 극지대 탐험을 가장 즐기는 CEO(최고경영자)의 한 명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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