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대학교>5.서울大 이모저모-관악캠퍼스 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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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대 관악캠퍼스는 관악산자락 1백7만평의 드넓은 대지위에 11개 단과대와 연구소등 1백여棟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자리잡고있다. 관악캠퍼스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75년.당시까지 서울대는 동숭동 문리대.법대,종암동 상대,공릉동 공대,용두동 사범대등 각 단과대들이 시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연합대학」의 성격이 짙었다.
67년 캠퍼스종합화계획이 추진될 당시 새 캠퍼스 후보지로는 지금의 관악산외에 태릉.안양 비산리.용인 신갈등지가 거론됐다.
2년여간의 부지 심사작업끝에▲서울중심에서 15㎞ 이내에 있고▲한강이남 개발이라는 정부방침과 일치하며▲자연경관이 아름답다는등의 이유로 현재의 부지가 결정됐고 당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최문환(崔文煥)총장에게『한강 언덕 위에 문화 의 유산을 이어받을 진리탐구의 전당을 마련해준다』는 친서를 보내 이를 통보했다. 71년4월 첫삽을 뜬뒤 4년간의 대역사(大役事)끝에 당시 동서관광㈜이 운영하던 관악골프장이 지성의 전당으로 변모하는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일어났다.지금의 교수회관은 당시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쓰이던 건물.
서울대 이전계획은『서울중심지에서 시위를 벌이지 못하게 하려는군사정권의 계략』이라는 학생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치는등 홍역끝에 75년 1차 이전이 시작됐고 79년말 공대가 마지막으로 이전해오면서 마무리됐다.
이전비용만도 75년 당시 돈으로 8천여만원,이삿짐 총 중량은2만여t으로 3t트럭 7천대분량이었으며 외국기술자까지 초빙한 공대 이전때는 1차 이전때보다 3배의 비용이 들었다.
서울대측은 최근 수도권정비개발법시행령의 개정에 따라 수원서둔동의 농업생명과학대.수의대도 관악캠퍼스 남쪽부지로 이전한다는 제2종합화계획을 세우고 있으나「환경보존」을 내세운 서울시의 반대와 주민들의 여론에 밀려 난항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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