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후의북한을가다>4.옥수수밭 密愛끝 戰士와 결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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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주민들이 가장 배고팠던 해는 93년으로,흉년의 후유증으로 노인과 아이들의 쓰러지는 광경이 여기저기에서 속출했었다고 주민들은 회고한다.
기자가 묵었던 집「아주마이」는 그때를 이렇게 떠올린다.
『하루 한끼 강냉이 밥으로 배를 채우고 살자니 「빵이 총칼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이 났습니다.그래서 미국놈들과 남조선 괴뢰도당놈들을 죽이고 싶었단 말입니다.』 그들은 통치자의 타락과실정(失政)을 조금도 대입하지 않고 자신들을 고립시키려는 그 두「놈」때문으로 알고 있었다.
『변방(국경)지역은 중국교포들이 들락거리다 나니까(보니까) 그래도 덜 하단 말입니다.내지에서는 더 많이 죽었을 것입니다.
』 『배고픔으로 힘없이 누워있는 가족들을 보고 수태(많이) 울었다』는 아주마이는 그래도 끝내 울지 않았다.
『과거에는 원단(새해)과 수령님.지도자동지 탄생일등에 돼지고기 1㎏.과일.사탕등을 선물로 받았는데 전쟁준비로 나라 살림이긴장해(어려워)이젠 두부 한모 뿐이란 말입니다.』 『「배고픔의이유가 수령님과 지도자의 우상화가 지나쳐 그렇다」는 보도가 서방세계에서 나오고 있다』고 하자 아주마이는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형편을 다른 나라가 알고 있단 말입니까.온 세상이부러워 한다는데….』 이런 대화를 중국으로 돌아가 말하면 자신의 신세는 물론 3代가족 8촌까지 망한다며 얘기를 중단했다.
김일성 부자의 지방 현지 지도때 당간부들이「부러움없이 산다」고 위장시켜 두사람은 인민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하루 두끼 먹는 요즘이 한끼로 배를 채우던 그때보다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일을 어떻게 추진해 이들을 도울 것인지 기자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감색.흑색.푸른색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그래서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런 찬송(?)을 부르며 학교로 달려간다.
「어머니란 그 이름 누가 지었나.
그 사랑 끝없어 어머니를 부르네.
사람들은 잠들고 밤은 깊어도 어머니의 사랑 이 가슴 울리네.
아! 그 어머니 사랑보다 더 크신 우리 당과 친애하는 지도자의 마음」 그러나 여기서도 청춘남녀들은 사랑을 하고,밀애로 가슴 태우기도 한다.장마당에 8개월된 아기를 안고 나온 20대 새색시는 친정마을 이웃 주둔부대 소속 전사(사병)와 눈이 맞아오랜 열애 끝에 결혼했다고 한다.
도로공사에 투입된 그 전사가 던진 농담에 호감을 갖고 어머니몰래 옥수수 밭에서 만나 심야에 사랑을 불태웠다는 것이다.
『「훌렁 떠나버리면 너만 신세 망친다」는 어머니가 옥수수 밭을 찾아다니는 바람에 꽤나 흥취(스릴)도 있었다』는 그녀는 군인의 아내됐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장마당에서 조선족들과 대화하면 안전부가 잡아가는 규정 때문에더 긴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아쉬웠다.
북한 여성들,특히 미혼여성들은 기름기 없는 얼굴이라 분을 발라도 밀가루를 뒤집어 쓴듯 푸석푸석했지만 머리손질은 정성껏 하고 다녔다.
묶은 머리,땋은 머리,붉은 천으로 예쁜 리본을 만들어 붙이기도해 머리손질을 위해 시간을 쏟은 것이 보였다.
중년부인들은 퍼머를 한 경우가 많았는데 가끔씩 누런색 시멘트부대를 잘라 감아올린 채 약물이 스며들어「퍼머기」가 정착될 때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외출한 부인들도 보였다.
중국 국경지대라 연변쪽 조선족 TV방송을 보고『별난 방송을 다 하더라』는 말도 했다.
함께 간 가짜부인「애인동무」가 북한 TV방송의 지나친 개인 찬양을 꼬집자『중국 테레비도 그렇더라』면서 한 말이다.
그들의 대화 내용이다.
『조선 테레비는 왜 지도자 얘기만 지내(계속)해 대는가?』 『중국 테레비는 더하지 않고?』 『어째 중국 테레비가 기렇데?』 『물건 소개가 똑같은 거 매일매일 나오지 않고?』 개방바람이 불면서 연변조선 TV가 방영하는 상품선전 CF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북한주민들은 그처럼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안전원(경찰)이나보위부원(특수부원)들로부터 심한 욕설과 구타당하기 일쑤여서 인권이란 것은 생각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들 기관원은 하찮은 일에도「간나새끼」「개새끼」등의 욕설을 퍼붓고 주먹과 발길질로 행패를 부려 북한 주민들은 이들에게 심한 공포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여성들을 향한 행패는 도가 지나쳐 20~30대 안전원이환갑이 지난 할머니에게도 반말을 하며 팔꿈치로 후려쳐도 당연한것 처럼 생각할 정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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