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서평>"韓國人의 國際政治觀"李昊宰교수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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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알고싶은 역사적 사실과 그 당시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상에대한 인식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즐겁고 흥미로운 분야라고 생각된다. 대한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로서 외국과 국제관계를 처음 맺은 것이 1870~1880년께라는 것과 그 이후 조선의왕실(王室)이 폐쇄되면서 국가가 소멸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누구나 역사책에서 읽어 배운 사실이다.그러나 왜 그런 분 한 일이생겼으며 그 당시의 지도자.지식인.정부 책임자는 무엇을 했기에1905년 을사조약을 통해 주권을 일본에 빼앗기고 말았는가.
어떻게 보면 이 저서의 필자는 그 당시 지식인들이 국제정치 현실을 잘못 파악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으며,그 뒤 광복직후에도 한반도에 정부가 수립되지 못한채 국토분단을 맞게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한국인의 국제정치관에 대한 「원형」이 개항당시,일제시대,그리고 광복직후에 많은 지식인들의 주장과 논설에서 드러나고 있다는것이 저자의 주장이고 업적이라 생각된다.민영환(閔泳煥).김옥균(金玉均).유길준(兪吉濬).전봉준(全琫準).민영 익(閔泳翊)등의 국제정치관과 「獨立新聞」「皇城新聞」「大韓每日新聞」등에 나타난 개항기(開港期)의 지식인 주장이나 신문논설(新聞論說)에 충실하면서 저자가 한국인의 국제정치관에 대한「원형」을 찾으려 노력한 흔적이 매우 크다.1910년대와 1920년대의 국제정세에대한 이해와 이를 주장하는 이광수(李光洙).최남선(崔南善)등의탁월한 견해,그리고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있어서는 해방(解放)과 함께 김구(金九).김규식(金奎植).여운형(呂運亨).
허헌(許憲)등의 대외 정세관에 대한 자세한 연구 결과도 담고 있다. 왜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주장하고 논하는 내용과 대상이 똑같은지 모르겠다.왜 우리는 美.러.中.日만을 쳐다보고 그다툼과 균형속에서만 한반도의 평화,독립된 정부,그리고 한국인의생존을 보호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일본의 자제(自制)를 희망하고,미국의 지원을 갈구하며,중국의힘을 과소평가하고,러시아를 부드러운 대상으로 생각하는 지식인의세계관이 역력히 자료로 입증되고 있다.
오늘날의 국제정세가 분명 1백여년전의 그것과 같은 것은 아니나 국제정치관의 「원형」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지식인은 예나지금이나 똑같은 생각의 틀을 갖고 있다고 보인다.지금도 저자가주장하듯 21세기의 통일시대를 열 수 있는 건 실한 세계관과 국력이 뒤따라 주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또 실패할 것이라 생각된다.우리의 주체적 주장과 정책을 추구할만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보다 저자 자신의 「사고의 틀」이 현실을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데는 크게 보탬이 되지 못했다고본다.저자가 서론과 결론에서,그리고 책의 전반적 흐름을 통해 현실적으로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 국제정치관을 가질 수 있는지에대한 암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차라리 우리는 새로운 21세기에 아시아에서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다든지,이에 대한 적극적 능력배양에 따르는 정책적 제안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읽고 난 뒤에 생기게 된다.그래도 이 책은 오늘을 살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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