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규제완화 거꾸로가는 酒稅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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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회재무위는 13일 정부가 제출한 주세법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수정통과시켰다.재무위는 정부측 개정안에 소주업계의 판도를 바꿀만한 규정을 추가했다.
1개 희석식 소주 제조업체의 국내시장 점유율을 33%로 제한하고 2개 제조업체의 시장 점유율도 도합 5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재무위는 개정안이 정한 비율을 이미 초과한 소주업체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3년안에 초과비율에 상당하는 양을단계적으로 감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내소주시장 점유율이 48%나 되는 진로소주는 큰타격을 받게 됐다.때문에 진로소주측이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등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재무위는 주세법을 심의하면서 여러차례 진통을 겪었다.개정안 제출 당사자인 재무부와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였다.주세법이 지난2일 새해 예산안과 함께 처리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무부는 개정안을 내면서「자율경쟁을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와 행정규제 완화」를 강조했다.반면 재무위 세법심사소위 위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독과점 방지와 영세업체 보호」를 내세웠다.
소위위원들은『92년 소주회사들의 도별(道別)연고를 인정해준 주정배정제도가 폐지된후 진로.두산등 대기업이 지역의 영세소주회사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만큼 제동장치가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다.또『소주는 국제경쟁력과 무관한 상품 이므로 영세업체들의 도산을 막는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무부는『과거 주정배정제도를 부활,소주업체들의 나눠먹기를 부채질할 셈이냐』『업체에 대해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것은 자유시장원칙은 물론 행정규제 완화라는 큰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고 거세게 맞섰다.그럼에도 의원들은 기어코 시장점유율 제한규정을 신설했다.재무부가 완패한 것이다.재무부와 의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둘다 일리가 있다.어느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장이며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빚어지는 오랜 숙제이기도 하다.그러나 문제는 일을 해결하는 접 근방식이다.
재무위는 서로 상충되는 중대한 사안을 논의하면서 소위위원 9명과 재무부관계자에게만 맡겨 두었다.심의기간이 비교적 많았음에도 문제의 접점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 전문가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는등 공론화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또 이해당사자인 소주업계 이야기도 듣지 않았다.
몇사람이 밀실(密室)에서「지지고 볶고」끝내버린 것이다.때문에법안심의과정에서 상당한 로비가 있었다는등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국회가 장막안에서 얼렁뚱땅 해치우는 바람에 큰 파동을 일으켰던 농안법(農安法)의 교훈을 벌써 망각한 것은 아닌지 주세법 개정은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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