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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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그리고,산 자도 말이 없었다(13) 길남의 목덜미에 손을 얹어 쓸어안으며 명국은 그때 목이 메어 말했었다. 『가거든,무사하거든 여기 일은 잊어라.아무것도 두리번거릴 거 없다.너만 무사하면 되는 거니까.여기 일따위 걱정하다간더 크게 일을 그르칠 수도 있어서 하는 얘기야.』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길남이 명국을 바로보며 말했었다.
『아저씨,저 지금 편해요.』 『편하다구? 뭐가.』 『마음이요.』 그랬다.삼식이 놈들 떠날 때도 이런 얼굴이었다.두려워하기는커녕 눈알에 불이 흐르는 거 같았다.
『건너가는대로…우선 협회증을 받아야 할텐데,그렇게만 되면 그때부터 아버지를 찾아보도록 할 작정입니다.』 『협화회 회원증 그거 말이냐?』 『네.』 『그게 그렇게 쉬운게 아닌데.』 『육손이 아저씨가 그건 해 주시겠다고 한 말도 있고하니,생각처럼 어렵지는 않을 거 같아요.』 『하나만 너한테 얘기해 두마.』 『네,말씀하세요.』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하는 게 사람이다.사람 조심하거라.사람을 못 믿고야 어떻게 살겠냐만,그러나 또끝내 못 믿을 게 사람이란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길남은 태성이와 함께 방파제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자정무렵 경비원들이 교대를 할 그때를 기다리면서.
『가자.』 태성이 길남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여기보다는 차라리 저쪽이 나을 거 같아.』 『마찬가지 아닐까.』 『아냐 그렇지 않아.내가 다 보아 두었다.저쪽 방파제는타고 내려갈 수도 있는데 네가 말한 데는 줄 없이는 내려가기 힘들어.』 둘은 방파제를 끼고 몸을 구부린 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길남은 명국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말이다.나설 일 있을 때는,나서기 전에 내 얼굴 한번만 생각해라.넌 그저 시작이 너무 빨라.언제나 그래.』 『명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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