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영 경험살려 강단 선다-대학 객원교수변신 장.차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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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수강생이 아닌 사람은 모두 나가시오.』 지난 3월 조선대에서 시작된 최수병(崔洙秉)前보사부차관의 첫 강의시간.
맨 앞줄에는 운동권이나 기관원으로 보이는 「학생 아닌 학생」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보러 온 눈치더군요.솔직하게 정부의 실책(失策)은 잘못됐다,잘된 부분은 잘했다고 하고싶은 말은 다했습니다.한 두시간 지나니까 수강생만 남고,학생들의 경계심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더군요.
이제는 친해졌습니다.
』 崔 前차관은 강단에서의 첫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제는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과 소주도 한잔씩 나누는 사이가됐다.판공비라도 나오는 날이면 술판이 훨씬 푸짐해지고 동료 교수들이 끼기도 한다.지난 9월부터 대구 계명대에서 「행정학특강/경제정책세미나」 강의를 맡고있는 문희갑(文熹甲 )前 경제수석. 현직 시절,「핏대」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강직했던 그는 학교에서도 역시 「정부관료에 대한 불신(不信)의 눈」에 정면으로대응,학생들과 여러차례 격론을 벌인 끝에 이제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교수」로서 학생들과 동화됐다.
강원대에서 지역농업개발특론을 맡고 있는 허신행(許信行) 前농림수산부장관은 원래 지난 3월부터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강의실에 한번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한 학기를 포기해야 했다.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학교 측에서 연락이 왔더군요.학생들의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거예요.우여곡절 끝에 결국 9월 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지금은 별 문제가 없어요.』許씨의 말이다. 강단(講壇)에 선 전직 장.차관들.한때 행정부의 선두에 서서 나라 경제와 외교정책을 주무르던 이들이 이제는 전국 각지의 대학 강의실에서 적게는 10~20명,많게는 1백여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경험과 경륜을 강의하는 데 온 힘을 쏟고있다. 행정부의 전직 관료나 연구기관등에서 활동하던 전문경력자들을 대상으로 올해 처음 도입된 「전문경력자 활용(brain pool)제도」에 의해 현재 지방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전직 장.차관이나 연구기관장들은 모두 26명.
처음에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정부에 대한 학생들의 무조건적인 거부감,동료(?)교수들의 텃세 등….
그러나 이제는 이런 어려움을 딛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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