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뇌관' 그가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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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이 돌아왔다.

BBK 주가 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로 미국에 도피 중이던 김경준씨가 16일 오후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송환됐다. 김씨는 인천공항에서 잠시 기자들의 사진촬영에 응한 뒤 바로 서울중앙지검으로 호송됐다. 사진은 서울중앙지검청사로 미소를 띤 채 들어가는 모습. 수갑 찬 손을 기내용 담요로 가렸다. [사진=김성룡 기자]

16일 오후 6시8분 BBK 전 대표인 김경준(41)씨가 미국 도피 5년11개월 만에 로스앤젤레스(LA)에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법무부 호송팀과 함께 귀국했다. 소용돌이치는 2007년 대선의 '마지막 뇌관'이다.

2001년 12월 김씨는 주가 조작과 횡령, 사기 혐의를 받는 가운데 미국으로 도망쳤다. 송환된 그는 '범죄 혐의자 신분'이다. 그러나 검찰이 그를 어떻게 수사하느냐에 따라 대선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인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김씨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자신의 범죄와 관련됐다고 주장한다. 자기는 이 후보의 하수인이었다는 것이다. "이 후보와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 그는 '제2의 김대업'이다. 2002년 사기꾼의 진술을 활용해 검찰이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가로막았던 '김대업 사건'의 주인공과 김경준씨가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정동영 후보의 범여권이나 이회창 무소속 후보 진영에서 김씨는 이명박 후보 독주에 제동을 걸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정치권은 '대선 뇌관'의 귀국에 이날 예민한 반응을 쏟아냈다.

이명박 후보는 "(여권이 2002년) 김대업을 알면서도 공작했고, 이번에도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이러고 있을 것"이라며 "그들이 한 가닥 양심이 있는 한 우리를 절대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법을 파괴하거나 파괴한 것을 은폐하려 했다면 어떻게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이 후보를 비난했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BBK 문제에 대해 검찰은 정치적 고려나 정략적 의도에 좌우되지 않고 공정하고 철저하게 진실을 밝혀라"고 요구했다.

정치권에선 '김경준의 파괴력'은 검찰의 수사 의지와 방향, 속도에 달려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검찰은 일단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

대선 후보 등록(25~26일)일 전에 중요 수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는 중앙선관위에 후보 등록을 하는 순간 7년형 이상의 중범죄에 해당하는 혐의가 아니면 12월 19일 대선 날까지 체포나 구속당하지 않도록 선거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

일단 법적으로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가면 정치중립 논쟁 때문에 검찰이 후보에 대한 사법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따라서 검찰은 24일까지 이명박 후보에 대한 혐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검찰이 이 후보를 소환할 것인지도 대선 정국의 중요 변수다. 대선 후보 소환수사는 1997년 '김대중 후보 비자금 사건' 수사 유보 조치에서 나타났듯이 검찰에 큰 부담이다. 이는 동시에 이 후보의 유죄 가능성을 암시해 지지율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

검찰은 17일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그의 요구로 영장실질심사를 거치게 되면 영장 발부 여부는 18일 또는 19일 결정된다.

◆웃으며 귀국=김씨는 오후 인천공항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두 곳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머리를 빗어넘긴 6년 전 스타일 그대로였다. 김씨는 공항 도착 직후 입국 게이트를 걸어나오며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김씨는 또 오후 7시50분쯤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선 질문공세를 퍼붓는 기자들을 향해 입을 벙끗 벌리며 웃었다. 현관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붙은 취재진에 그는 "일부러 이때 온 게 아니에요. 민사소송이 끝나서 온 거예요"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선을 겨냥해 온 게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고정애.이상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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