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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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3.실종○21 그런 와중에,학교에서는 기말고사라고 했다.
시험이라는 건 정말이지 죽이는 거였다.어떤 시점에서의 어떤 과목의 내 실력이 점수로 표시되는 거였다.가령 1992년 여름의 장달수는 물리가 60점짜리였다고 기록되는 거였다.
나는 간혹 신문 같은 데에 무슨 유명한 사람의 학생시절 성적표 같은 게 나오는 걸 보면 세상이 개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하였다.그런 건 6살적의 내가 몇 명의 여자 친구와 병원놀이를 했는지,아니면 1살 때의 내가 기저귀를 차 고 있었으며주로 거기에 설사를 했다든지 하는 걸 기록해두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에는 한번 역사 시험에, 수천년인가 수만년 전에 해변가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토기에 무늬가 있는 걸 썼는지 무늬가 없는토기를 썼는지 하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나는 우선 그걸 우리가 왜 알고 지내야 하는지 짜증이 나기도 했 지만,어쨌든 나는 복불복으로 무늬가 없었다는 쪽에 동그라미를 쳤는데 나중에시험지를 돌려줄 때 보니까 정답은 정반대였다.
그래서 나는 역사 점수가 74점짜리가 된 거였다.나는 하도 기가 막혀서 역사 선생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그 옛날 사람들이쓰던 그릇에 무늬가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까.직접 본 적은 없다고,선생님이 그러셨다.하지만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이미 정통학설로 굳어져 있는 사실이라고 하셨다.나는 추측이 가능한 몇 가지 상황들을 열거하면서,따라서 무늬가 없는 토기도 몇 개쯤은 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는데,그러자 역사 선생님은 몹시 화를 내셨다.
그 다음부터 나는 학자라는 사람들은 오만방자한 자들이며,또 직접 본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망설이지도 않고 내 답안지에 엑스 표시를 하는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신중하지 못하고 경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그런 선생님들은 결국 앵무새 같은족속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된 거였다.
그 뒤에 언젠가,역사에 대해서 남달리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나폴레옹이 역사에 대해서 내린 결론을 읽고는 얼마나 통쾌했는지모른다.「내가 역사에서 배운 한 가지 사실은,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나폴레옹 은 나보다 몇 백년이나 앞서서 벌써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해냈던 거였다.그러니까 역시 나폴레옹이었다.
그러나 내 성적표에는 그런 저런 사정은 다 생략된 채 역사 74점이라고만 기록되는 거였고,그게 어쩌면 나중에 신문에 나게될지도 모르는 거였다.성적표의 가정통신란에는 선생님이 또 언제나처럼「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함」이라고 써줄 것이다.「머리도나쁜데 노력도 안함」이라고 썼다가는 엄마들한테 견뎌낼 수 없을테니까.기록이라는 것도 대부분은 타협의 결과니까.
어쨌거나 기말고사를 볼 때 왕박사가 내 앞자리에 앉은 건 천만다행이었다.왕박사는 공부라면 그래도 우리 학년에서 캡방이었다.나는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에 볼펜으로 왕박사를 콕콕 찔렀다.
『야 왕박,우리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모리스식으로 알지? 왼발이 문제 번호고 오른발이 답이야.알지?』 왕박사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달수 넌 공부를 열심히 하고도 성적이 나쁘면 그게 견딜 수 없으니까 공부를 안해서 못하는 거다 그러고 있는 거야.교장선생님의 지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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