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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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내 어린시절에 내가 겪은 가정교육은 아주 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적어도 체벌을 얼마나 받았느냐를 기준으로 한다면 나는 아마도 아주 강도 높은 교육의 혜택을 입은 축에 속할 것이다.그리고 이건 아주 슬픈 일이지만,매를 무기로 다스려지는 대상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는 무기력했고 그러면서 아주 착한 소년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이 되던 해의 장마 때까지 그랬다.
무슨 일 때문인지 나는 어머니에게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다가 밖으로 뛰쳐나갔다.이건 전에 없던 일이었다.마당에서 비를 맞고선 나를 어머니가 창을 열고 너 미쳤니 하는 표정으로 내다보고있다가 소리쳤다.
『비 맞지 말구 빨리 들어와.』 『인제부턴 나 매 안 맞을 거야.…맞는 거 싫단 말이야.얼마나 아픈지나 알아요.…앞으론 나 때리지 않겠다구 약속해.안그러면 나 집에 안들어갈 거야.』내가 어느날 갑자기 비폭력을 선언한 것도 웃겼지만,더 알 수 없었던 건 어머니의 반응이었다.어머니는 한 삼사 분쯤 창밖에 비 맞는 나를 구경하다가 의외의 결과를 발표하셨다.
『알았어.들어와.니가 싫다면 앞으론 안 그럴게.』 어머니는 마치 그때까지는 내가 매를 좋아해서 매를 베풀어주었던 사람처럼말씀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한번도 어머니에게 얻어터진 일이 없었다.그런점이야말로 내가 어머니를 좋아하고 또다른 애들에게도 자랑하는 부분이었다.
어머니의 매가 사라지고 나자,나는 그때까지 내가 어머니에게 맞아온 매들이 어쩌면 어머니의 주장대로 내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퍼뜩 들고는 하였다.그리고 그 매들이 아주 교육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그래서 때때로 어머니에게 손바닥을 맞아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달랐다.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에게 맞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우리집에 상주하는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나서부터였다.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 역시 내가 서먹서먹한 것 같았 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아버지와 나 사이를 좁히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왜냐하면 나는 그런 면에서라면 수동적인 입장에 있고 싶었다.아버지와 내가 친하지 못했던 건 순전히 아버지 쪽의 책임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거였다. 하여간 아버지는 벙어리 총독님처럼 굴었는데,벙어리치고는 늘 너무나 엄숙하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셨다.
『…네 뜻대로 어떻게든 사는 거지.』 형이 대학 시험을 앞두고 어느 학과에 응시할 것인가를 식탁에서 아버지에게 여쭤봤을 때,아버지는 형의 말을 못들은 사람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그러다가 식사가 다 끝나갈 때쯤에서야 아버지가 그러셨던 거였다.
네 뜻대로 어떻게든 사는 거지.잘 생각해 보거라.
그날 이후,나는 아버지가 늘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무언가 우리 형제에게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들을 꾸욱 참고 있는 표정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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