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몸&마음] 눈 수술 하고 입원해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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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생활을 10년 가까이 한 나로선 환자 입장보다는 의료진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편이다.

그런 내가 환자가 되는 일이 발생했다. 맨 처음 시력이 떨어졌다고 느꼈던 건 두 달 전이다. 곧바로 병원을 찾아야 된다고 직감했다. 하지만 의사로부터 “수술하라”는 말을 듣는 게 너무 싫어 ‘괜찮을지도 몰라’란 어리석은 기대를 하며 지나쳤다.

오랜 세월 학습에 의해 익혀온 의학적 지식보다는 문제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환자로서의 본능적 심리가 더 크게 작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력은 더 떨어졌고 보름 전, 마침내 병원을 찾았다. 담당의사는 "황반(망막에 맺힌 상을 총괄하는 부위)에 구멍이 생겨 하루빨리 수술해야 된다”며 “좀 더 일찍 오지 않고, 뭐했느냐”고 질책을 했다. 나는 솔직하게 “수술할까봐…”란 대답을 했고 그는 어이없어 했다. 다른 환자 이야기였다면 나 역시 ‘미련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환자로서 겪는 고통은 수술 뒤 마취에서 깬 직후부터 시작됐다. 수술 부위의 통증뿐 아니라 한동안 똑바로 누울 수 없다는 현실은 큰 고통이었다. 손상된 구멍을 막기 위해 수술 중 눈 속에 기체를 넣었는데 치료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한동안 엎드린 자세만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 엎드린 자세에 조금씩 익숙해질 것”이라는 의료진이 위로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감각신경이 무뎌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입원실의 삶은 시간의 흐름과 고통의 강도가 상대적임을 절감케 한다. 예컨대 엎드린 자세의 고통은 수술부위 통증이 심할 때보다 진통제 효과로 통증이 무뎌질수록 심해진다. 또 병실에서의 하루는 평상시의 한 달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가장 반가운 순간은 의료진의 검안 시간, 안약 넣는 간호사의 방문, 그리고 식사 때다. 엎드린 자세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기다리다 못해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지금 몇 시냐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번씩은 했다. 어쩌다 의료진이 바빠 이런 순간이 걸러지면 얼굴을 들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사실에 무척 화가 났다.

사소한 병동의 일상도 짜증거리였다. 아이 우는 소리엔 ‘하필 내 병실 밖에서 아이를 달래나’싶어서, 또 복도에서 보호자들의 잡담 소리가 들리면 ‘안정은 언제 취하라고…’란 생각에 신경질이 났다. 물론 화가 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환자로서 겪는 고통·소외감·무력감·병원비 지출 등이란 걸 안다.

하지만 환자가 돼보니 모든 문제가 죄다 병동에서 일어나는 일때문이라고 탓하고 싶은 ‘투사(Projection)’ 심리가 발동하는 걸 어쩌랴. 입원 생활 사흘째, 나는 불만 가득한 환자가 돼버린 것이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퇴원 날이 다가왔고 담당교수는 수술 결과가 좋으며 더이상 엎드려 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했다. 그 순간, 그간의 모든 불만이 사라지면서 담당교수와 병실 의료진에 감사의 마음이 넘쳐 흘렀다.

집으로 돌아와 누운 침대에서 바라본 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다는 행복감도 밀려 왔다. 이제 다시 진료를 한다면 좀 더 환자를 이해하는 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의료진 모두에게 1일 환자 체험이라도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황세희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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